Miral Church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박국의 말씀입니다.

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 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믿음으로 사는 자가 의인이라는 말입니다. 나는 무엇으로 살려고 하고 무엇으로 현재 살고 있나?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은 무엇으로 살고 있을까요?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다 같은 세상속에서 함께 살아갑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자신이 살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찾아 그것으로 살아갑니다. 그럼 우리 믿는 자들은 어떻게 살 수 있나? 믿지 않는 자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있습니까? 없지요. 그들이 가진 것을 우리는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가지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뭐냐? 그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사랑과 주의 은혜를 거부하지 않고 받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다른 어떤 것에 의지하는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고 주의 은혜에 힘입어 산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만 바라며 산다는 것입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우리 믿는 자들이 의지할 만한 것은 사실 믿음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믿음 있으면 산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사랑과 주의 은혜를 받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 이것이 필요한지를 보겠습니다. , 광야에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보겠습니다.

21:4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21:5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21:6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21:7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2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21: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이스라엘의 죄로 인해 다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자들이 모세의 기도로 인해 놋뱀을 쳐다보면 살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놋뱀을 쳐다본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살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인데 그것을 내가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바라보면 살 수 있는 분이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왜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죽게 된 것입니까? 5절을 다시 보면

21:5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이들이 하나님께서 권능로 애굽에서 고역살이를 하던 자들을 광야로 인도하여 종국에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과 은혜는 다 잊어버리고 당장 자신들의 입에 맞는 먹을 것과 넉넉하게 마실 물이 부족한 것에 대해서 하나님과 지도자 모세를 원망하고 불평했던 것입니다. 이 원망과 불평으로 인해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바라 본 것은 먹을 것과 마실 물이 없어 힘든 자신의 처지와 현실의 상황과 환경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불평하게 되고 원망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런 악한 힘든 고난의 상황만을 보면 우리의 신앙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살 수 있겠습니까? 무엇을 봐야 하는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고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을 봐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살 길이 있는 것입니다.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12: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히브리서 기자는 2절에서 예수를 바라보자고 했고 3절에서는 우리의 죄를 참으신 예수를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 우리가 바라봐야 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이 말은 예수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열어놓으신 생명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의인은 이 생명의 길되신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아 사는 자들입니다. 어떻게?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이 아니고서는 살 수 없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자신들의 힘과 능력에 의지해서 살아간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얼마나 살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죽은 이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죽고 나면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영원한 세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세계에서의 삶이 있는 것인데 그곳에서의 삶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육신의 삶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세계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믿음으로 사는 삶을 연습하고 훈련하는 것입니다. 이 훈련이 안되어 있다면 어떻게 믿음으로 사는 세계에서 살 수 있겠습니까?

, 여러분 이제 새로운 한 달이 시작되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또 귀한 한 달을 허락하셨을까요? 우리가 이 땅에서 달라져야 하고 변화되어야 할 모습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믿음으로 사는 자들로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타락이란 바로 이 믿음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구원이란 이 잃어버린 이 믿음을 되찾는 것입니다. 구원은 칭의가 있고 성화가 있습니다. 칭의는 단번에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지만 성화가 남아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습관이 바뀌는 것입니다. 불신과 불순종의 삶 즉 믿음을 잃어버리고 살았던 삶에서 이제는 믿음과 순종의 삶을 사는 삶으로 우리의 내면이 달라지고 우리의 행실이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길을 가다보면 믿음으로만이 살 수 있는 이 세계를 직접 경험하게 되면서 우리의 삶이 점점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 여러분, 주님과 사도들이 보여준 믿음으로 사는 삶을 잘 보고 잘 배워서 우리도 믿음으로 사는 자들이 되고 또 우리의 후손들에게도 이 놀라운 세계를 계승해 줄 수 있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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