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11: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오늘 말씀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에게 쉼과 안식을 주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자들을 향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다 내게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안에 있는 수고로움과 무거운 짐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무엇이 우리를 수고롭게 하고 무거운 짐을 지게 하는가? 사실 알고보면 다 살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먹고 살기 위해서 고생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정말 우리가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산다는 것이 뭘까?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 살아있는 삶인가? 성경에 보면 똑같이 살아 있어도 죽은 자가 있고 살아있는 자가 있습니다.
마 8:21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8:22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새번역으로 보면
마 8:21 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말하였다. "주님,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8:22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따라오너라. 죽은 사람의 장례는 죽은 사람들이 치르게 두어라."
여기보면 죽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육신은 살아있지만 죽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삶을 살고 있나요? 죽은 자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창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열매를 먹으면 죽는다고 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해서 그 나무 열매를 따먹었습니다. 따먹고 어떻게 되었습니까? 죽었습니까? 살았습니까? 살았으나 죽었습니다. 육신은 살아있다 할지라도 그들의 신앙이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신과 불순종으로 이들의 신앙이 죽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과 단절된 채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 또한 살기 위해서 열심히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지만 육신만 살아있다고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루 하루의 삶이 죽지 못해 살고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다면 그것이 진정으로 살아있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런 고통스러운 인생으로 우리를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인생 – 이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신 세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인생,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고통스러운 인생이라면 이것은 내가 뭔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또 이것은 신앙에서의 삶도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율법적으로 신앙하는 삶이라면 그것은 그것은 신앙 자체가 무거운 짐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모습이 이런 모습은 아닌가? 내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고 이것도 지켜야 하고 저것도 지켜야 하는 신앙. 율법적인 종교를 보면 구원을 받기 위해서 인간이 해야 할 여러가지 것들을 붙여놨습니다. 그것이 너무나 무거운 짐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인간의 행위와 공로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에게 다 내게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왜 우리가 주님께로 돌아가야 하는가? 우리의 삶이 주님과 멀어지는 삶이 된다면 우리의 인생은 필연적으로 수고하고 고생스럽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삶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물고기가 물 속에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새는 하늘을 날아야 하죠. 우리는 주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마13장을 보면 누룩 비유가 나오는데요.
마 13: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이것은 천국에 관한 비유입니다. 천국은 어떤 곳인가?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누룩을 넣어서 부풀게 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누룩은 뭐죠? 밀가루를 부풀게 하는 것입니다. 영어로는 이스트입니다. 이 누룩이 밀가루 반죽 속으로 들어가야 빵이 되는 것이 아닙니까? 만일 진흙 속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요? 어떤 변화가 없습니다. 누룩만 버릴 뿐입니다.
지금 내 삶이 천국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마치 누룩이 들어가야 할 곳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어서 내 삶의 어떤 변화도 없고 새로움도 없고 그저 누룩만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주님은 너희가 다 내게로 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새는 공중에서 살아야 하고 물고기는 물 속에서 살아야 하고 우리는 주님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요 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너희가 내 안에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요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언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가?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 거하고 있습니까? 주님의 말씀애 내 안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하셨습니다. 다 이루어주신다고.
이 놀라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주님께로 올 때만이 벗어집니다. 누가 내 무거운 짐을 대신 들어주겠습니까? 자기 짐도 지기 싫어하는데 누가 다른 이의 짐을 대신 들어주고 싶어하겠나? 오직 주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목숨까지도 내어주신 분이십니다.
이런 주님을 만나고 주님 안에 거할 때 비로소 우리가 참 안식과 쉼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주님의 주시는 이 쉼을 얻는 사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계속 보면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11: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첫번째 쉼이 있고 두번째 쉼이 있습니다. 첫번째 쉼은 주님께로 나아갈 때 그래서 주님 안에 거하게 될 때 얻게 되는 쉼입니다. 이것만으로 충분할 것 같은데 주님은 두번째 쉼을 말씀하십니다.
두번째 쉼은 주님의 멍에를 멜 때 얻게 되는 쉼입니다. 주님은 너희가 이 멍에를 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을 받은 자는 사랑을 주는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일까요? 왜 우리의 삶이 힘들고 고통스럽나?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근본적인 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을 받은 자가 사랑에 응답하지 못하고 사랑을 나누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받았다면 즉 사랑의 빚을 진 자는 그 빚을 갚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갚지 않고 떼먹고 그러니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사랑에 얼마나 잘 반응하고 응답하고 그것을 갚고자 하나?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롬 1: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빚을 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께 진 사랑의 빚입니다. 왜냐면 죄인된 자신을 불러 의인 되게 하시고 사도로 세우고 놀라운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받은 이 사랑의 빚을 모든 사람들에게 갚고자 했던 것입니다. 왜냐면 주님은 나를 사랑한다면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거든요. 주님의 양을 먹이는 것이 주님께 받은 사랑을 갚는 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 사랑의 빚은 주님 뭐라고 하셨습니까? 쉽고 가볍다고. 사랑으로 지는 짐은 무겁지 않습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행하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무겁더라도 무겁지 않습니다. 신기합니다.
이것이 사랑의 능력입니다. 지면 질수록 오히려 더 기쁩니다. 더 큰 쉼을 얻게 됩니다. 이런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