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l Church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5: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오늘 본문의 말씀은 산상수훈의 말씀으로써 팔복에 관한 말씀을 다 전하시고 나서 하신 말씀입니다.

8가지의 복 받을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시고 그 길을 따라 사는 자들에게 세상의 소금과 빛의 사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소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짠맛을 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소금이 짠맛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마치 시계가 시간을 알려주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시계가 아무리 많은 기능을 가지고 있다 한들 시간을 알려주지 못하면 그것은 더 이상 시계가 아닌 것입니다. 시계로써의  창조의 목적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분명한 창조의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 자들입니다. 그러나 이 창조의 목적을 잃어버린 채 다른 수많은 옵션같은 기능을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할 나인지를 모른 채 다른 것을 아무리 잘 해도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다른 것을 좀 잘 하지 못해도 창조의 목적을 따라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소금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 부름을 받았던 많은 자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이 짠맛을 잘 내주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소금으로 부름을 받은 자들이 짠맛을 잃어버리고 다른 것에 열중한다든지 다른 기능과 역할을 하고 있다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왜 짠맛을 잃어버릴까요? 소금이 짠맛을 잃어버리다니 상상하기 힘든 것이지만 짠맛을 잃어버린 소금과 같은 자들이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 다시 제자들을 세상의 소금으로 부르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들에게 당부하는 것은 결코 맛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맛을 잃어버리는 것입니까? 소금에 다른 것들이 섞여지기 때문입니다. 마치 포도주에 물이 섞여 들어오면 포도주의 맛이 싱거워지듯이 소금에도 다른 것들이 섞이게 되면 짠맛이 점점 약해집니다.

그래서 소금이 짠맛을 잃어버리면 이제는 소금을 짠맛을 내는 기능으로 쓸 수가 없습니다. 우리안에도 이렇게 다른 것들이 들어와 섞여져 있는 모습은 없습니까? 본문에서는 이렇게 되면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히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러가지 불순물들이 섞여서 짠맛을 잃어버린 소금은 예루살렘 성전에 잘 모아두었다가 겨울에 성전 바닥이 미끄러워지면 미끄럼방지를 위해서 소금을 뿌렸다고 합니다. 짠맛을 잃어버린 소금을 사람들에게 밟히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바닷물의 소금 농도는 약 3.5%라고 하는데요. 바다 속에 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버리는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바다가 썩지 않는 이유는 3.5%의 소금 때문이라고 합니다.

전세계 기독교 인구가 30%가 넘는다고 하는데요. 이 중에서 진정한 이면적 크리스천 즉 짠맛을 잃지 않은 소금과 같은 자들이 3%만 있어도 세상은 썩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금의 맛을 가진 자들이 중요한 것입니다.

지금 주님은 너희가 세상의 소금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너희가 세상의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왜냐면 소금이었던 자들이 점점 맛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유럽은 기독교의 중심지였던 곳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구교 신교 가릴 것 없이 수많은 성당과 교회가 문을 닫고 철거되거나 매각 되어 박물관이나 술집, 카페, 극장, 학교, 서점 등등으로 바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많았던 교회의 신도수가 계속 줄어 더 이상 교회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영국이나 독일 등 비어있는 교회가 그렇게 많다고 합니다.

어떤 학자는 100년 안에 유럽에서 기독교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신실했던 신자들이 맛을 잃은 소금이 되어 이제는 세상 사람들에게 밟히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짠맛을 가진 소금이 다시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은 너희가 바로 세상의 그런 소금이 되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금으로 불려진 자들임을 알고 소금의 역할을 다 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그러자면 세상의 것들로부터 우리 자신을 잘 지켜야 합니다. 세속적인 문화가 들어오면 어느 순간 우리도 맛을 잃어버린 소금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36개월 동안 제자들을 늘 데리고 다니시면서 그들을 세상의 소금으로 만드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소금이 되게 하셔서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 또한 세상의 것들이 섞이지 않는 순전한 세상의 소금이 되어 세상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소금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5: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두번째는 너희가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을 세상의 빛이라고 하신 것은 세상을 비출 빛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세상을 환하게 비출 빛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1:4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1:5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계는 빛이 있었던 세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손수 만들어주신 이 빛으로 인해 어둠이 나뉘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타락한 세계는 이 빛이 사라져 다시 어둠이 섞이고 어둠이 가득한 세계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다시 이 어두운 세상 가운데 빛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의 이 시대를 보십시오

얼마나 빛이 가리워지고 빛이 보이지 않는 세계 속에 살고 있는가? 성경에서의 빛은 진리를 상징합니다. 진리에 눈이 감겨진 자들. 이들이 복음서에 보면 소경, 맹인이라는 병자로 나오잖아요.

9장에 보면 날때부터 소경된 자가 나오는데 그가 주님을 만나 눈을 뜨게 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9: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9: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9: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9: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9: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9: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9: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5절에 보면 주님께서 내가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빛되신 주님이 우리의 닫힌 눈을 열어줄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의 눈이 열립니까? 이 소경은 실로암에 가서 눈을 씻고 왔더니 밝히 보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실로암은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사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냐? 나는 보냄을 받은 자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을 두 글자로 사명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깨달아야 밝히 보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명을 깨달은 자들입니까?

우리가 주님을 만나야 하는 이유는 주님을 만나야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됩니다. 야곱이 광야에서 주님을 만난 이후에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됩니다. 내가 하늘과 땅을 이어줄 사닥다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누워있던 자가 서게 됩니다. 빛이 들어온 것입니다. 빛이 들어오면 우리 안에 있던 어둠이 다 사라집니다. 어둠이 사라진 자들 이제 그들이 세상을 비춰줄 빛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빛을 얻어 빛을 가진 자가 되면 사람이 달라집니다. 매우 담대히지고 적극적인 사람이 됩니다.

내가 빛을 가졌으니까요.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이 빛으로 어둠을 물리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께서 왜 제자들에게 너희가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까? 환하게 밝혀야 할 곳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태양이 뜨면 온 세상이 다 밝아지는 것이지만 그러나 태양을 등지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잖아요. 그들에게 직접 가서 빛을 보게 하고 빛을 얻게 해야 합니다.

지금의 시대를 보면 예전에 그렇게 환하게 비추었던 나라들이 불이 다 꺼지고. 아시아로 목숨걸고 선교했던 유럽의 나라들이 이제는 다 힘이 빠지고 시들어지고 불이 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빛으로 오신 주님께서 너희가 바로 세상을 환하게 비출 빛이 되라 하신 것입니다. 이 빛은 모든 사람에게 비쳐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로마서에 보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이 영광을 어떻게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요? 착한 행실을 통하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고 했습니다. 착한 행실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이미 들어와 있는 빛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빛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복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낮아지심과 비우심과 섬기심과 죽기까지 복종하신 주님의 삶이 우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착한 행실이고 이를 통해 우리가 먼저 구원을 받은 것처럼 많은 이들이 이 복음의 능력으로 구원을 얻게 될 때 잃어버린 하니님의 영광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 시작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 되고 빛이 되는 것입니다. 이미 소금으로 빛으로 부르셨습니다. 그것을 내가 알고 믿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주님께서 우리를 들어쓰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자들이 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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