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죄인이 어떻게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을까요? 길은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율법이고 또 하나는 복음입니다. 먼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아 즉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잘 지킴으로 의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은 죄가 있다면 그 죄값을 다 갚아야 합니다. 갚지 않고 의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예를 들어 빚이 있다면 이 빚을 다 갚아야 자유해질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빚이 너무 많아서 다 갚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일만달란트 빚진 자가 나옵니다.
마18:24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18: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18:26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18: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만 달란트 빚진 자에게 그 빚을 다 갚으라 했습니다. 그래야 자유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율법입니다. 그런데 이 종은 그 빚을 다 갚을 수가 없습니다. 자기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그 모든 소유를 다 판다 해도 갚을 수가 없는 너무나 큰 빚이었던 것입니다. 갚을 수가 없으니 이 사람은 자유함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종의 주인이 어떻게 했습니까? 그를 불쌍히 여겨 이 종의 빚을 탕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놓아 보내주었습니다. 이것이 두번째 길인 복음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용서입니다.
자, 눅15장에 보면 세가지 비유가 나오는데 이 비유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마지막 세번째 비유를 보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탕자의 비유인데요. 탕자가 아버지 집을 떠나죠. 그러다가 그가 어떻게 다시 돌아오게 됩니까?
눅15:11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15:12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5: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15: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둘째 아들은 아버지가 주신 재산을 가지고 집을 나간 후에 며칠 잘 신나게 놀다가 돈 다 써버리고 궁핍하게 되었습니다. 이 탕자가 지은 죄는 무엇입니까? 아버지 집을 떠난 것이죠. 아버지를 떠난 것이 왜 죄가 됩니까? 요15장에 보면 주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15: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주님 안에 거하지 않으면 밖에 버려져 메말라지고 결국 불에 던져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포도나무이신 주님께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포도나무에서 분리된 가지만 비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해서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면 결국 궁핍해지고 비참해지는 것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을 떠난 우리입니다. 하나님에게서 인간을 빼면 하나님은 하나님 그대로 존재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에게서 하나님을 빼 버리면 인간은 그 자체로 존재 자체가 불가능해집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실 수 있는 분이시지만 인간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면 또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게 되면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수고롭게 지으신 최고의 걸작품인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까? 더군다나 사랑의 대상으로 지은 자가 스스로 자신을 파괴하고 멸망받게 한다면 그것만큼 큰 죄가 어디 있나?
사랑으로 낳은 자식이 부모가 싫다며 집을 나가 얼마가지 못해 죽게 되었다면 그것이 부모에게 얼마나 큰 죄가 되는가? 자녀는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지만 부모는 자녀가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면 자신 홀로 멸망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지으신 하나님께 말할 수 없는 아픔과 슬픔과 상처와 한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면 안됩니다. 떠났다면 빨리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어떻게 돌아올 수 있습니까? 말씀을 계속 보면
눅15: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5: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5: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이렇게 아버지 집을 떠나 살게 되면 결국은 주려 죽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육적인 양식도 문제지만 영적인 양식을 먹지 못해 우리의 영이 죽는 것입니다. 살았으나 죽은 자인 것입니다. 다시 살 수 있는 길이 어디에 있나?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15: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5: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집을 나간 죄인이 어떻게 아버지 집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나? 방법은 두가지가 있는 것입니다. 첫번째 율법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율법의 요구를 만족하는 것입니다. 지은 죄가 있다면 그 죄 값을 다 갚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탕자가 아버지 가슴에 못을 박고 나갔으니 그는 이 죄를 어떻게 갚을 수 있습니까? 이제는 더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자기 신분이 박탈 당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큰 죄를 지으면 해고되잖아요. 파직되어 쫓겨납니다. 이 탕자는 이제 자신은 아들이 아니라 품꾼이 되겠다고 합니다. 지금 탕자는 이렇게라도 다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것입니다. 아버지 집의 품꾼이라도 지금 여기보다 낫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성을 지키는 보잘 것 없는 문지기가 세상의 가장 높은 왕의 자리보다 낫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시 84:10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그 이유가 뭔가?
84:11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하나님의 해가 되시고 방패가 되셔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고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낌없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세상 그 어디에 우리에게 빛을 주고 우리를 지켜줄 해와 방패가 어디 있나? 없습니다. 이런 세계를 알았던지 탕자는 품꾼이라도 좋으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고자 했습니다. 이제 아들의 자격으로는 돌아갈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입니다. 이에 아버지는 어떻게 합니까?
15:20 ~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15: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15: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15: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15: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아버지는 이 탕자를 율법이 아닌 복음으로 그를 받아줍니다. 율법은 조건을 다 만족시켜야 의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그 조건을 다 만족시킬 수 없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율법 외에 복음이라는 또 다른 의로운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용서입니다.
무조건적인 용서. 그의 어떤 조건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비록 죄인이라 할지라도 그를 사랑하셔서 그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고 받아주는 것. 이것을 내가 감사함으로 기쁨으로 받아 들이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이 믿음으로 우리는 의롭다 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탕자는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을 거부하지 않고 감사와 기쁨과 눈물로 받음으로 그는 다시 아버지의 사랑하는 아들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 탕자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하심으로 가능하게 된 것이고 이 탕자는 그것을 거져 값없이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비록 죄를 짓고 멀어졌다 할지라도 이 믿음 붙들고 하나님 앞에 다시금 나아가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를 의롭다 칭해주시고 우리의 해와 방패가 되시고 은혜와 영화를 아낌없이 부어주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