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7: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어제에 이어서 보겠습니다. 4절에서는 바울이 율법에 매여 있던 내가 죽었으므로 그리스도에게로 간다 할지라도 그것은 불법이 아니고 배반이 아니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너희도 나와 마찬가지로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했으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에게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럴 때만이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굳이 그리스도에게로 가지 않아도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교회에 가지 않아도 삶에 불만이 없고 지금도 잘 살고 있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러나 바울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될 때만이 우리는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느냐? 다음 절에서 이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롬7: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우리 안에 율법으로 말미암은 죄의 정욕이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죄를 짓지 말라고 합니다. 율법의 요구대로 우리가 죄를 짓지 말아야 할텐데 연약한 육신 안에 있는 자들은 죄를 짓지 말라고 하면 더 죄를 짓고 싶어하는 죄의 정욕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나? 죄의 정욕이 역사해서 열매를 맺게 하는데 그 열매가 사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연합되어 있던 죄의 정욕으로 인해서 결국 우리가 맺는 열매는 사망을 위한 열매, 사망의 열매 뿐이라는 것입니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못된 마음. 먹지 말라고 하면 더 먹고 싶은 마음. 우리 안에 반역과 반항의 마음이 있습니다. 이것이 죄의 정욕이라는 것입니다. 저주 받은 땅에서 오염된 물을 마시며 사는 자가 어떻게 건강할 수 있겠습니까? 몸에 좋지 않은 불량 식품을 먹으면서 어떻게 몸이 튼튼할 수 있겠나? 이것이 우리의 영적인 상태였음을 바울은 말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는 것이죠.
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이제는 우리가 율법에서 벗어났다고 했습니다. 율법에 매여 있던 우리의 몸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죽지 않았다면 계속해서 율법이 우리를 참속하고 우리를 정죄할 것입니다. 우리 맒에 시달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 뭔가에 시달려 본 적이 있습니까? 그것만큼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율법이 우리를 계속해서 참소하고 정죄합니다. 이것으로부터 끊어낼 방법이 없습니다. 유일한 방법은 죽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죽으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가 죽지 않고 죽는 방법이 있으니 그것이 대속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대속하셨으므로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해서 죽게 된 것이고.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는 영의 새로운 것을 섬기며 사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는 삶이라는 것이 뭘까요? 바울은 율법을 남편으로 여기고 마치 아내가 남편을 섬기듯 순종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율법에 매여 있던 몸이 그리스도와 죽고 그리스도와 다시 살아 이제는 그리스도를 자신의 진정한 남편으로 섬기며 살게 된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우리의 옛 주인이었던 죄의 말을 듣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를 지배하던 왕이 바뀌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우리의 남편으로 우리의 왕으로 섬기는 새로운 삶, 새 시대가 되었으니까요.
여러분,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달라진 이 놀라운 시대를 우리가 잘 알아야 합니다. 애굽에서 탈출한 자에게 더 이상 애굽의 병사는 따라오지 않는 것이고 더 이상 애굽의 고역살이는 없는 것입니다. 이제는 무한한 자유를 가진 자가 된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7장의 한 단락입니다. 내가 왜 그리스도에게로 옮겨 갔는지를 설명하면서 사랑하는 자기 동족 유대인들도 자신이 있는 곳으로 건너오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은 기회만 있으면 자신이 어떻게 회심하게 되었는지 간증을 많이 했습니다. 다른 것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무엇이 자신을 변화시켰는지를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난 이후에 일어난 변화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잘 증거하고 그것을 드러낼 수 있습니까? 바울은 그리스도를 믿고 난 이후에 분명한 삶의 전환이 왔습니다. 이 삶의 전환이 얼마나 극적인 변화였으면 자신이 죽었다고 말하겠습니까?
여러분 우리에게는 이런 극적인 변화가 없겠습니까? 아니죠. 다 있는 것인데 단지 우리가 이것을잊고 살기 때문입니다. 처음 전도 되었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눈물 흘렸을 때. 주의 십자가의 은혜를 경험하고 결단하며 주의 가겠다고 했을 때. 바울과 우리의 차이점은 단 한가지. 바울은 그때를 잊지 않고 늘 기억하고 회상하고 그것을 간증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부어주신 주님의 놀라운 은혜가 있습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옛 사람이 죽고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죽어야 다시 살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육신의 몸, 죄의 몸이 죽었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지 마시고 바울 사도와 같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로서 주님만을 섬기며 주님과 연합하며 주님 안에서 사랑의 결실을 가득 맺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