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l Church

창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2: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22: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22:4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창22장은 아브라함이 백살 때 얻은 아들 이삭을 번제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부르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험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시험은 마귀의 유혹과 시험처럼 우리를 무너뜨리고 우리를 실족케 하는 그런 시험이 아닙니다. 

약 1: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 시험은 뭔가? 하나님의 시험은 일종의 테스트입니다. 우리에게 더 큰 영광과 선물을 주시기 위한 테스트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시험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창 22: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을 경외하는가? 그렇지 아니한가?를 하나님 앞에 보인 증거하는 시험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합니까? 나는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이 뭘까요? 아브라함은 어떻게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을 나타내 보였습니까? 이삭을 번제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한 것입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이럴 수 있다면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을 드러낼 수 있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2: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이삭을 번제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금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 것입니다. 이삭을 번제하라는 것이 쉽게 들려질 수 있는 그런 말씀이 아니죠. 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것이지만 자칫 잘못하면 사탄의 음성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오해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분별이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자신을 생각해보세요. 자신이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할 수 있는 수준인가? 아닌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하신다면 누구에게 말씀을 하실 수 있을까요? 

마5장에 보면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전히 내 속에 죄가 있어서  마음이 청결하지 못하고 순결하지 못하다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도 분별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자에게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큰 문제가 생길 수 있기에 하나님께서 그런 자에게 말씀을 하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삭번제를 하라는 하나님의 말씀도 언제 아브라함에게 하신 것입니까? 아브라함의 길 가운데 마지막의 자리에서 이런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지금까지 아브라함은 어떤 길을 걸어왔습니까? 창12장부터 그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만을 붙들고 본토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실 땅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나아왔고 그로부터 25년이 흘러 100살이 되어서 비로소 아들 이삭을 얻게 되었고 이제 마지막의 자리에서 아브라함이 그토록 사랑했던 아들 이삭 보다 하나님을 더 우선에 둘 수 있는지를 테스트 하는 것입니다. 즉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감당할 수 있는 믿음의 수준이 된 것이고 그런 때가 된 것이기에 이런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고전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을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누구보다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잘 아십니다. 그 이유는 우리를 가장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나를 가장 많이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너무 잘 아시고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자, 하나님은 이렇게 아브라함의 말년에 그가 감당할 수 있는 시험을 주신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세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계속 보면

22: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22:4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아침 일찍 일어나 두 명의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땅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3일이 지났습니다. 아브라함에게서 3일은 어떤 기간이었을까요? 이 기간은 오직 자신과의 치열한 믿음의 싸움을 하는 인내의 기간이었을 것입니다. 이 기간 동안에는 아브라함이 얼마나 많은 생각과 고민을 했을까요? 자신에게 떨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을 번제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그 어떤 지식과 지혜로도 그 어떤 능력으로도 도저히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그런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누가 이 말씀에 답을 줄 수 있었을까요? 누가 도와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오직 아브라함 홀로 싸워 가야 하는 참으로 외롭고 고독한 길이었을 것입니다.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을까요? 

우리가 신앙의 길을 가다보면 아브라함의 3일과 같은 기간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시지만 그 어디에서도 하나님을 찾을 수 없고 응답받을 수 없고 오직 믿음으로만 가야 하는 기간. 아브라함은 3일이라는 이 기간을 오직 믿음으로 이기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산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간을 승리하지 못했더라면 아브라함은 도중에 포기하고 돌아섰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이 3일의 기간을 승리한 것입니다. 어떻게 아브라함이 이 기간을 승리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다 알면 좋지만 그렇지 못할 때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무슨 사정이 있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인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욥 1: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달라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믿는 청지기 신앙.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것을 잠시 잠깐 관리하고 맡고 있는 것 뿐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분명 이 신앙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갔을 것입니다. 우리도 이 신앙으로 주의 길을 가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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