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l Church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벧전1: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1: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오늘은 베드로 사도의 한 말씀을 보려고 합니다.

이 편지는 누구에게 한 것입니까? 1-2절 보면

1: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는 지금의 터키 북부에 위치한 곳입니다. 이곳은 어떤 곳입니까? 갈라디아를 제외하고는 바울이 전도를 하려고 했으나 성령께서 막으시고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아서 가지 못했던 그래서 바울은 어디로 갑니까? 마게도냐로 갑니다.

행전16: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성령께서 막으시니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간 것입니다.

16: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앞에 왔는데 이제 비두니아로 가고자 했으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아 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본도나 갑바도기아 같은 더 안쪽에 있는 도시를 못갔습니다. 그럼 어디로 갔느냐?

16:8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반대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환상을 봅니다.

16: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6:10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마게도냐로 가게 되어 위대한 유럽 선교의 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바울이 가지 못했던 아시아, 비두니아 본도, 갑바도기아 같은 곳을 간 것입니다. 그래서 찾아진 자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처럼 고린도 에베소 빌립소 이렇게 하나 하나 도시별로 교회별로 각각 쓴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씁니다. 왜 그랬을까요? 많이 전도가 안되서 수가 많지 않아서 그러지 않았을까?

여하튼 바울이 가지 못했던 곳을 베드로가 갔다는 것이고 많든 적든 그곳에서 찾아진 자들에게 편지를 쓴 것입니다. 이렇게 찾아진 자들을 베드로가 뭐라고 합니까?

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하나님의 예지예정을 따라 성령께서 거룩하게 하셔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 쉽게 말하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말미암아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로마에서 뭐라고 했습니까?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정하시고 부르셔서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바울도 그렇고 베드로가 그렇고 이들이 지금 말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또 성령께서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예지 예정하셔서 우리를 택했다는 것입니다. 택했을 뿐만 아니라 영화롭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겠습니다.

벧전1: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이들이 가진 믿음이라는 것은 확실한 것인데 비록 없어질 금도 귀하게 쓰임 받기 위하여 불로 연단을 받는 과정을 거치는데 하물며 귀한 금보다 더 귀한 너희들은 어떠하겠느냐? 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너희를 귀하게 쓰임 받게 하기 위해서 연단하시지 않겠느냐? 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연단하시는 분이십니다.

17:3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은과 금을 왜 연단합니까? 그것은 정말 순수한 순금이 되게하려고. 정금이 되게 하려고 그러면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것이니까요. 그러면 가치가 정말 높아집니다. 금이 왜 귀하나?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오래 흘러도 변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금을 연단하듯 그래서 정금이 되게 하시듯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연단하신다는 것입니다.

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많은 환란과 시련을 통해 연단된 욥이 했던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단련하시고 연단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연단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금이 되게 하시고 순금이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가장 가치로운 인생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삶 가운데 어려움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장 존귀하고 가장 가치롭게 하시기 위한 연단의 과정으로 믿기를 바랍니다. 베드로는 뭐라고 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받게 하시고 영광 받게 하시고 금보다 더 귀하고 가치로운 존귀함을 받는 자가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연단하신다고. 바울이 로마서5장에 보면

5: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5: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어준다고.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나님의 꿈이 있고 소망이 있는데 이 소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연단을 통해서 이루어주신다고. 맵집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많이 맞아본 사람은 맵집이 강해집니다. 그래서 왠만한 공격에도 끄떡하지 않습니다. 많은 환난과 고난과 어려움과 시험을 받아본 자는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요동치지 않아요. 이런 사람 되고 싶지 않습니까? 큰 바위 같고 큰 산 같은 사람. 어떻게 이런 사람이 되나? 연단을 통해서.

우리는 연약해서 환경과 상황에 쉽게 흔들리고 별거 아닌 일에도 쉽게 분노하고 다투고 미워하고 쉽게 마음이 꺾이고 좌절하고 절망하고 조석으로 마음이 바뀌고. 자기가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도 더 힘들어 하고. 그러나 여러분,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요동치지 않는 사람으로 쉽게 변하고 흔들리지 않는 산 같은 사람으로 바꾸어 가십니다. 어떻게? 연단을 통해서 이것을 알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연단을 통해서 우리의 소망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소망을 가지고 살아갑니까? 각자가 원하는 소망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며 수고하고 애쓰며 사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어떤 자들인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소망의 세계가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소망을 향해 우리를 이끌어 가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소망이 뭔가?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소망을 붙들고 사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 베드로는 계속 말합니다.

1: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예수를 보지 못했지만 너희가 사랑했다고. 이제도 보지 못하지만 믿는다고. 또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변화된 자들이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믿을 수 있나?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니 믿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한 자들이지요?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주님을 믿고 사랑할 수 있는가?

사도들이 하나님을 믿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온 몸으로 당신의 모든 삶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또 예수를 보지 못한 자들이 예수를 사랑하게 된 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앞선 자들이 그 사랑으로 또 이들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사랑하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으로 예수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믿음의 선배들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 사랑을 알게 되어 우리도 사도들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는 자들이 된 것이 아닙니까?

이 사랑의 결과가 뭔가? 우리의 영혼 구원을 위해서라고. 주님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것은 우리 영혼의 구원을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었다고. 이 사랑을 우리는 은혜라고 말합니다.

이 놀라운 은혜를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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