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롬14: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로마서 중에서 아름다운 바울의 고백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롬14: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우리 중에 누구도 자기를 위해서 사는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또 자기를 위해서 죽는 자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우리가 살고 죽는 이유가 자기에게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 사는가? 혹은 왜 죽는가? 그 이유가 자기에게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럼 누구에게 있다는 것입니까?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창조의 세계를 보면 이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우리의 창조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의 대상으로 지으셔서 우리가 생육하고 번성하여 만물을 다스리는 자들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생육도 사랑이고 번성도 사랑이며 만물을 다스리는 것도 사랑입니다. 사랑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보이신 사랑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후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주님은 우리를 부요하게 하기 위해서 스스로 가난하게 되신 분이십니다. 사랑은 중심이동입니다.
나를 세상의 중심으로 여기며 살아왔던 삶에서 이제는 나의 중심을 옮기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랑은 사랑의 대상에게로 이사 가는 것입니다. 이사가는 것 쉽지 않잖아요. 아무리 포장이사라 해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기 싫잖아요. 그런데 이사 가는 것이 굉장히 기쁠 때가 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훨씬 좋은 곳으로 옮겨갈 때 이사짐 싸는 것도 힘들지만 기쁘고 그 날이 기다려질 것입니다.
사랑이 이런 것입니다. 가기 싫은데 억지로 가는 그런 이사가 아닙니다. 너무나 기뻐서 가는 이사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이 바로 이런 사랑이었습니다. 부요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로 모든 중심을 옮겨주셔서 우리를 부유하게 하셨는데 이것이 하기 싫어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옮기신 것입니다.
요 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사랑해서 기꺼이 서로에게로 옮겨가는 것 – 이것이 사랑입니다. 자기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중심이 얼마나 잘 옮겨지고 이동되었습니까?
우리 말에 기둥 뿌리가 뽑힌다는 말이 있습니다. 기둥이 뽑히면 집은 무너지는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기둥을 뿌리채 뽑아서 우리에게 옮겨 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가난하게 되셨고 우리는 부유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부요함이라는 것이 주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셔서 모든 것을 내어주심으로 우리가 살았으니 내가 이제 사는 것은 나의 삶이 아닌 주님의 삶이고 주님을 위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 안에 주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입니다. 이제 내 몸은 나를 위한 몸이 아니라 주님을 중심에 모시기 위한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사는 나는 오직 주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자기 아들 압살롬을 피해 도망을 갈 때 가드 사람 잇대라는 이방인이 있었는데 그가 다윗을 따라가면서 했던 말이 있습니다.
삼하15:14 다윗이 예루살렘에 함께 있는 그의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일어나 도망하자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 중 한 사람도 압살롬에게서 피하지 못하리라 빨리 가자 두렵건대 그가 우리를 급히 따라와 우리를 해하고 칼날로 성읍을 칠까 하노라
15:15 왕의 신하들이 왕께 이르되 우리 주 왕께서 하고자 하시는 대로 우리가 행하리이다 보소서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하더라
15:16 왕이 나갈 때에 그의 가족을 다 따르게 하고 후궁 열 명을 왕이 남겨 두어 왕궁을 지키게 하니라
아들을 피해 도망가는 다윗의 비참한 모습을 그려놓고 있습니다.
15:17 왕이 나가매 모든 백성이 다 따라서 벧메르학에 이르러 멈추어 서니
15:18 그의 모든 신하들이 그의 곁으로 지나가고 모든 그렛 사람과 모든 블렛 사람과 및 왕을 따라 가드에서 온 모든 가드 사람 육백 명이 왕 앞으로 행진하니라
15:19 그 때에 왕이 가드 사람 잇대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도 우리와 함께 가느냐 너는 쫓겨난 나그네이니 돌아가서 왕과 함께 네 곳에 있으라
15:20 너는 어제 왔고 나는 정처 없이 가니 오늘 어찌 너를 우리와 함께 떠돌아다니게 하리요 너도 돌아가고 네 동포들도 데려가라 은혜와 진리가 너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15:21 잇대가 왕께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내 주 왕의 살아 계심으로 맹세하옵나니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사나 죽으나 종도 그 곳에 있겠나이다 하니
사나 죽으나 자신도 다윗왕과 함께 하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자기 백성도 아닌 이방인이 다윗을 위해 이렇게 충성을 맹세할 수 있었을까요? 다윗으로부터 먼저 자신이 사랑이 있었고 은혜가 있었기에 그도 이렇게 다윗을 위해 충성할 수 있는 자가 된 것입니다. 다윗은 이후에 이들을 데리고 함께 갑니다.
사나 죽으나 왕과 함께 하겠다고.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