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l Church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50:21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요셉의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요셉이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또 엄청난 꿈을 꾸고 나니 나머지 형제들이 요셉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그를 죽이려 했으나 그를 죽이지 않고 애굽의 종으로 팔아버렸습니다. 피를 나눈 형제를 팔아버린 이런 비정함 이것이 우리 안에는 없는가? 정말 고통스러운 것이 뭐냐면 서로 사랑해야 할 형제 자매 부부관계 가족 등등 이런 자들이 오히려 서로를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라고 짝지어진 자들,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나고 만난 자들, 사랑으로 맺어진 자들이 오히려 더 미워하고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말이 되는가? 말이 안되지만 이런 일들이 역사 속에서도 일어났고 지금도 수많은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 죄를 이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를 이길 수 있는가? 죄를 이기자면 죄를 알아야 합니다. 적군이 누군지도 모른데 어떻게 이길 수 있겠습니까? 신앙 왜 하나? 죄와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 마침내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함이 아닌가? 큰 예언을 받고 은사를 받아도 죄를 이기지 못하면 오히려 더 교만해질 뿐입니다.

죄를 이기지 못하니 야곱의 위대한 가문 속에서도 형제를 팔아먹는 죄를 짓게 됩니다.

유다의 제안으로 요셉을 애굽의 종으로 은20에 팔아 먹은 것입니다. 예수님도 유다가 팔아버렸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애굽으로 팔려갔는데 바로의 시위대장이었던 보디발의 종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요셉은 성실히 일했습니다. 그래서 증거를 받아 보디발 장군의 모든 소유를 요셉에게 다 맡깁니다. 그런데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합니다.

39:6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39:7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39:8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39: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동침하기를 청했다고. 믿음의 길을 가는 자들에게는 항상 이런 사랑의 유혹이 와서 무너뜨리려고합니다. 그 때 이 유혹을 꼭 이겨야 합니다. 요셉은 이 사랑의 유혹을 이긴 자였습니다. 어떻게 이런 사랑의 유혹을 이길 수 있었을까요?

39: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당신은 보디발 장군의 아내 즉, 나의 주인의 아내라고 합니다. 주인이 나에게 금한 것은 오직 당신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주인의 아내인 당신과 동침하겠느냐? 이것은 큰 악일 뿐 아니라 이것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먹으라고 주신 것이 있고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은 딱 하나이고 나머지는 다 먹을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먹지 말라고 하신 딱 그것 하나에 주목하게 합니다. 또 먹지 말라 하신 것도 알고보면 우리를 위한 것이죠. 요셉은 주어진 범위 내에서 자유를 누리며 주어진 경계선을 넘지 않았습니다.

요셉 안에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절대 가치기준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뭔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절대의 말씀이 있어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분명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죄라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 죄 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이 시대는 절대를 잃어버린 시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절대가 사라지면 모든 것이 상대가 되어버립니다. 이럴 때 그 무엇도 우리를 붙잡아 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왜 흔들리나? 왜 갈등하나? 왜 혼란스러운가? 왜 방황하나? 나를 붙잡아 주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무엇도 확실한 것이 없습니다. 그럴수도 있고 안그럴수도 있는 뭐든지 다 애매한 것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버린 이유는 절대이신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가 세워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말씀으로는 분명히 죄이지만 절대가 없는 상대에서는 죄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이방인입니다. 이 여자에게는 절대가 없습니다. 그러니 요셉과 동침하는 것을 죄로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냥 자기가 하고 싶으면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절대기준이신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는 매사가 분명한 것입니다. 애매한 것이 없습니다. 나중에 바로의 꿈을 풀어줄 때에도 꿈을 너무나도 정확하게 풀어줍니다. 그는 애매한 것이 없습니다. 주님을 빛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빛되신 주님께로 나아가면 모든 것이 분명해지고 명확해집니다.

하나님 말씀은 분명하고 정확하고 맑고 아름답습니다.

6:10 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 여자가 누구인가

여자는 교회를 상징합니다. 그리스도의 교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는 바로 이런 모습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침 빛 같이 뚜렷해야 합니다. 분명해야 합니다. 확실해야 합니다. 애매하고 모호하고 두리뭉실하고 흐리멍텅하고 그러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뚜렷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달 같이 아름다워야 하고 해 갚이 맑아야 합니다. 다른 것이 섞여서 탁해지면 안됩니다. 그리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해야 합니다

요셉은 바로 이런 자였던 것입니다.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만 있었기 때문에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죄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홀로 있을 때에도 결코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혼자 있을 때 죄를 쉽게 짓는 이유는 뭔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있으면 혼자 있다고 해서 함부로 눈으로 죄 지을 수 없습니다. 요셉이 그러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죄 짓지 않으려 몸부림 치다가 결국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으로 왕의 신하들이 잡혀 있는 감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믿음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이런 시련이 옵니다. 이것을 이상하게 여기면 안됩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다 죄짓는 자들인데 그 중에서 죄를 짓지 않겠다고 하면 당연히 미움을 받습니다. 이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15: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우리는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니기 때문에 세상이 미워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보다 먼저 미움을 받으셨고 우리는 그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요셉도 그렇게 미움을 받아 감옥에 갇혔지만 그곳에서도 요셉은 증거를 받습니다.

39:20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39: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39:22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39: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감옥에서조차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는 요셉의 모습으로 요셉에게 간수장이 하는 모든 일을 다 맡깁니다. 얼마나 일을 열심으로 성실하게 잘 처리했으면 이렇게 했겠나? 금은 어디를 가나 금입니다.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어디를 가도 증거를 받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형통케 하셨습니다. 우리도 이런 증거를 받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어떤 자리에서도 우리의 할 일을 성실히 행하고 말씀을 따라 지킬 것을 잘 지키고 가면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화롭게 하십니다.  

마침내 요셉의 바로의 꿈을 풀어줌으로 그가 애굽의 총리대신이 됩니다. 어떤 꿈이었나?

7년의 풍년 후에 7년의 대흉년이 오는 꿈이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지혜로 7년의 풍년 동안 곡식을 창고에 모아 그후에 있을 7년의 흉년을 대비합니다. 7년의 흉년에 야곱의 가문에도 곡식이 떨어져 식량을 구하러 애굽으로 왔다가 드디어 요셉을 만나게 됩니다.

요셉은 비록 자신을 애굽의 종으로 팔아버린 참으로 비정하고 원수와 같은 형제들이지만 요셉은 그들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절대 예정과 섭리임을 굳게 믿고 그들을 따뜻하게 위로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요셉에게 악을 행하여 종으로 팔아버린 형제들 안에 자신들이 행한 죄에 대한 죄책감과 혹시 모를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야곱이 살아있을 때에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이제 야곱이 죽자 요셉이 보복을 하지는 않을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50:15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50:16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50:17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형들이 요셉에게 우리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합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이렇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하신 사람의 모습입니다. 누구도 죄를 원해서 짓는 사람이 없고 죄 짓고 즐거운 사람이 없습니다. 죄를 지으면 죄책이 와서 괴로움과 고통으로 인해서 잠을 못잡니다. 기본적으로 죄를 지으면 벌을 받고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우리 안에 있는 양심이 알고 있습니다. 이 죄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 어떻게 자유해질 수 있는가?

요셉이 이들의 말을 듣고 울어요. 왜 웁니까? 요셉의 마음을 너무 모르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이미 처음 이들을 봤을 때부터 이들에게 악을 갚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45: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45:6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45: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45: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나를 이리로 보내신 이는 당신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고 합니다. 형제들을 향한 미움과 분노와 악한 마음이 요셉 안에는 없었습니다. 이미 이들을 다 용서했던 것입니다. 이 용서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요셉은 어찌 정말 못된 형제들을 이렇게 용서할 있었나? 선하신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섭리에 대한 믿음이 있으니 원수와 같은 자라도 용서할 수 있고 그를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셉은 이들을 이미 용서했지만 형제들은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요셉이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50: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요셉도 알고 있었습니다. 나를 미워했고 시기질투해서 나를 죽이려 했다는 것을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악을 선으로 바꾸셔서 이렇게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들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전적 주권과 역사하심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이들의 죄까지도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인도하심이었다고 말합니다. 대단한 믿음입니다. 그러니 요셉 안에 미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말합니다.

50:21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이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들까지도 다 기르겠다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간곡히 위로했다고. 더 이상 두려워말라고.

창세기는 이렇게 요셉의 용서로 끝납니다. 창세기의 결론이 용서입니다. 미움과 악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용서입니다. 용서가 안되는 이유는 뭔가? 악도 선으로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에 대한 믿음 그래서 우리를 가장 영화로운 곳으로 인도해주신다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한쪽문을 닫으시면 이미 더 좋은 또 다른 문을 열어두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으로 모든 악을 이기고 사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

© k2s0o1d6e0s8i2g7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