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l Church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7: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7: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7: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본문의 말씀은 마5-7장을 통해 주님께서 말씀해 주신 소위 황금률이라고 하는 산상수훈의 마지막 결론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참 많은 말씀들을 해주셨는데 이 많은 말씀을 가지고 뭘 하라고 주신 것인가? 천국의 백성이 되라고 주신 말씀들입니다. 그러자면 24절의 말씀처럼 우리가 주님의 귀한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24절을 보면

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지으면 그 집은 무너지지 않는 집이 됩니다.

7: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7: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7: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우리는 다 집을 짓고 있는 것입니다. 집을 보면 여러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기와집도 있고 통나무집도 있고 아파트도 있고 등등. 여러가지 집의 종류가 있지만 주님의 말씀에 의하면 집은 두가지만 있습니다. 무너지지 않을 집과 무너지는 집 나는 어떤 집을 짓고 있는가? 아무리 화려하고 아름다운 집,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무너져버릴 집이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고 수고하고 고생한 모든 것이 것들이 다 헛수고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리석은 모습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나는 어떤 집을 짓고 있는가? 화려한 집을 짓는 것보다 무너지지 않는 집을 짓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하여야 무너지지 않는 집을 지을 수 있나? 반석 위에 집을 지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반석이라는 것은 곧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행하고 있나? 그렇지 않다면 결국은 다 무너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무너지는가?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힌다고 했습니다.

믿는 자든 믿지 않는 자든 누구에게나 고난은 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항상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힘든 일, 어려운 일, 고난과 환난이 동일하게 옵니다. 그럴 때 믿지 않는 자들은 다 무너지고 쓰러지지만 믿는 자들은 그 고난과 어려움으로 인해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6장에 보면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명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떨까요? 노아에게 지으라 하신 방주는 누구를 위한 것이었습니까? 노아와 그의 가족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노아의 방주는 노아와 그의 가족을 위한 것이지 그것이 나를 위한 방주가 아닌 것입니다. 나와 내 가족과 내 사랑하는 자들을 위한 방주는 내가 직접 우리가 직접 만들어야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대신 만들어줄 수도 없고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목욕을 누가 대신해 줄 수 있습니까? 밥을 누가 대신 먹어줄 수 있습니까? 내가 직접 하지 않으면 그것은 나의 것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지어야 할 방주가 있고 그것을 우리가 직접 지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노아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말씀을 듣고 방주를 완성했습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6: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 준행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역사가 새롭게 시작이 된 것입니다. 노아가 말씀에 순종해서 방주를 다 만들어내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소돔과 고모라 땅에서 살다가 나중에 그곳이 다 멸망을 하게 되잖아요. 롯은 그곳에서 방주를 지었을까요? 못 지은 것일까요?  노아의 때와 롯의 때는 다 같이 심판의 때였습니다. 그러나 이 둘의 차이점은 노아는 방주를 지었다는 것이고 롯은 방주를 짓지 못한 것입니다. 방주가 없으니 심판의 때에 심판을 피해 이리 저리 도망 칠 뿐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롯은 아내도 잃어버리게 되잖아요.

우리가 왜 방주를 지어야 하나? 사랑하는 자들을 지키고 구원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왜 구원이 필요한가? 구원이란 무엇인가? 구원은 죄로부터의 구원이라고 배웠습니다. 죄는 죽음을 가져옵니다. 즉 구원은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집을 지을 때 반석 위에 지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반석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 우리가 집을 지어갈 때 죽음은 없다는 것입니다.

11: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주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산다고 했습니다. 부활입니다.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주님을 믿고 부활한 자에게는 이제 죽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영생만이 있다고.

우리는 주님이라는 이 반석위에 집을 지어야 죽음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 그럼 이제 우리는 주님이라는 반석 위에 어떤 집을 지어야 하나? 두번째 본문을 보면 초대교회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너지지 않는 튼튼한 기초를 마련했다면 이제 그 위에 멋있는 집을 지어야죠. 멋있는 집은 어떤 집일까요? 영화를 보면 멋있는 집 많이 나오잖아요. 2층 저택에 정원도 있고 수영장도 있고 연못도 있고 등등. 그림 같은 집들을 본 적이 있을텐데 우리는 어떻게 집을 디자인해야 하나?

우리가 말씀을 알면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성경에 나와 있거든요. 우리는 성경에 나와 있는대로 그 모습을 따라 만들어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우리가 말씀을 잘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 말씀을 보면

행전 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먼저 보면 사도의 가르침이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힘썼다고 했습니다. 말씀이 있고 친교가 있고 기도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교회에서 그리고 우리의 가정에서의 기본적인 틀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것의 시작은 말씀입니다. 말씀이 있어야 교제도 되고 기도도 있는 것입니다. 말씀이 없는 세상에서도 교제가 있지요. 그러나 말씀이 없는 교제라는 것을 상상해보세요. 말씀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있고 믿음이 있고 소망이 있습니다. , 말씀하는 교제는 그 안에 서로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있고 미래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교제, 믿음이 없는 교제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렇게 될 때 서로를 비판하고 판단하고 정죄하는 교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가족이고 친구인데 왜 싸우고 미워할까요? 기본적으로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있어도 그 말씀대로 행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는 이유는 그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함인 것입니다.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우리의 가정과 교회는 말씀이 살아있어서 그 말씀으로 교제하고 기도하는 가정이 되고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사람마다 두려워한다고 했습니다. 서로에 대한 두려움이란 무엇일까요? 야곱이 광야에서 돌베개를 하고 자다가 하늘 사닥다리의 꿈을 꾸고 깬 이후에 했던 말이 있습니다.

28: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28: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돌 베개를 하고 잠을 잤던 바로 이곳이 하나님이 계신 곳이었음을 알고 야곱이 두렵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우리는 다 수평적으로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계시면 수직이 세워집니다. 서로에 대한 두려움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알 때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저 사람과 함께 하시는구나 라는 것을 알면 그를 결코 함부로 할 수 없고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서로를 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서로에 대한 두려운 마음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운 마음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라면 누구를 두려워하겠습니까? 우리 안에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까? 다른 말로 경외심이라고 하는데요. 잠언서에 보면(17, 910)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과 지혜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안에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있습니까? 이삭번제의 시험도 보면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아브라함에게 있는지를 확인하시는 시험이었습니다.

초대교회의 사람들 안에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있었기에 서로에 대해서도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서로를 배려하고 높여주고 섬기며 살았던 것입니다.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 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초대교회 사람들이 서로를 이렇게 두려움으로 대접하니 자신도 그렇게 대접을 받는 그런 교회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 시대는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시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장에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나오는데 왜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가 임하게 되나? 인간 안에는 불경건의 죄로 인한 것임을 바울이 말씀하고 있는데 왜 불경건하게 되나? 이 불경건이란 무엇인가?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1: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1: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고 감사하지도 아니하며 생각이 허망해져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잘 보세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떠냐? 사람을 대할 때에도 함부로 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면 그 두려움을 가지고 서로를 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함께 하시고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를 내가 함부로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정말 사랑하면 결코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또 정말 사랑하는 자가 있다면 그를 나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죠. 나의 것이 되면 내가 그를 지켜주어야 하지만 하나님의 것이 되면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무리 힘이 있고 능력이 많아도 내가 그를 얼마나 지켜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과 비교가 되겠습니까? 그래서 초대교회 사람들은 서로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여기며 두려워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마음으로 우리의 가정을 만들고 교회를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2: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2: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초대교회는 소유에 메이지 않고 소유를 극복했던 자들이 모임이었습니다.

행전 4:32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소유 때문에 무너지고 갈라지고 분리되는 이 시대에 모든 소유를 넘어서 있었던 모습을 보게 되는데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요? 신앙이 이것을 가능케 합니다. 어떤 신앙입니까? 먼저는 청지기 신앙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데 그것을 잠시 우리에게 맡기신 것뿐이라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때가 되면 하나님께 반납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아들의 신앙입니다. 이것은 상속자의 권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모든 것은 아들에게 상속되듯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아들의 이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지금 좀 부족하고 지금 좀 없어도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주실 것이니 다시 말하면 우리를 영화롭게 하실 것이니 지금의 고난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초대교회는 기쁨과 찬송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기쁨이 있습니까? 바울사도는 항상 기뻐하라고 했는데요. 무엇으로 말미암은 기쁨입니까? 구원입니다. 구원 받은 자들 안에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 감사가 있고 기쁨이 있고 찬송이 있습니다. 이 구원은 내가 뭘 해서 대가로 받은 것이 아니죠. 은혜로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구원은 결코 사라지거나 취소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불안과 두려움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구원에 대한 깊은 기쁨과 찬송이 가득했던 초대교회의 모습을 닮아 우리도 이런 가정 이런 교회를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이 땅에서 만들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멋있는 집이 되고 교회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그 누가 대신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내가 만들어야 하고 우리가 서로 말씀을 중심삼고 하나되어 만들어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부활절을 지나 오순절을 향해서 가고 있는데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아 제자들이 다 변화된 것처럼 우리도 성령을 받아 갈수록 더 아름다운 모습이 되고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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