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l Church

 

3: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3: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3: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3: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3: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3: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오늘 본문은 빌립보 교회 사람들에게 보내는 바울의 편지 중에 일부분입니다. 여기보면 바울이 그리스도를 만나고 어떻게 변회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바울과 같이 달라진 모습으로 주의 길을 따라가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본문을 보겠습니다.

3: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할례파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유대인들은 할례를 통해서 하나님을 믿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을 구별했습니다. 할례를 해야만 유대인이 되고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자들에게 바울은 누가 진정으로 할례파인가? 다시 말하면 누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자들인가? 에 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먼저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자기 힘과 능력을 의지해서 사는 자들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을 구하고 성령의 능력에 의지해서 주의 일을 하는 자들이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할 수는 있지만 이룰 수는 없습니다. 의롭다 함을 받을 받는 것 곧 칭의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이고 성화는 성령으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스스로 내 힘으로 내 안에 있는 죄의 습관을 이길 수 없습니다. 안됩니다. 성령께서 들어오시면 희한하게 달라집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모든 것이 쉬워지고 가벼워지고 다 잘됩니다.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성령받기를 사모하셔서 성령을 받아 모든 일을 쉽고 가볍게 감사함과 기쁨으로 주의 일을 행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나는 무엇으로 자랑하며 무엇을 신뢰하며 사는 자인가? 바울의 이 말씀을 잘 보면 예수로 자랑하고 예수를 자랑하는 자는 육체를 신뢰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육체를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는 자는 예수를 자랑할 수 없습니다. 예수도 자랑하고 육체도 신뢰하는 자는 없다는 것입니다. 공존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은 영어 성경으로 보면 보이는 육체에 자신감을 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보이는 것, 외적인 것, 표면적인 것을 중시하면서 그것으로 자신감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 특히 할례를 강조했던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믿고 예수를 의지하며 예수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의 육체 즉 그들이 했던 율법적 행위들 그들이 했던 의식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특권의식을 가지고 이방인들을 차별하고 무시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했던 자들이었습니다.

2장에서 바울이 강조했던 것은 할례는 마음에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2:28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육신의 할례가 아닌 마음의 할례를 받아 표면적인 유대인이 아닌 이면적 유대인이 되어야 한다고했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말씀이 아닙니다.

9:2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면 할례 받은 자와 할례 받지 못한 자를 내가 다 벌하리니 

9:26 곧 애굽과 유다와 에돔과 암몬 자손과 모압과 및 광야에 살면서 살쩍을 깎은 자들에게라 무릇 모든 민족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 하셨느니라

이미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하셨던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육신의 할례만을 행하며 그것으로 마치 다 된 것처럼 온전한 자가 된처럼 살았던 것입니다. 육신의 할례만 받고 마음의 할례는 받지 못한 자들은 곧 성령을 의지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자랑하지 아니하고 육체를 자랑하며 그것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자들인데 그들은 결국 하나님께서 벌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자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육체를 자랑하고 싶어 하는 자들에게 다시 말합니다.

3: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3: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3: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지금 육체를 신뢰하고자 하는 자들에게 바울이 나는 육적으로 보면 세속적으로 보면 나는 자랑할 것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팔일 만에 할례를 받은 이스라엘 족속이며 베냐민 지파일 뿐 아니라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며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 교회를 박해하고 핍박했던 사람.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육적으로 말하면 자랑할 것이 넘쳐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당시 가장 명성높은 가말리엘의 문하생으로써 유대의 랍비였으며 또한 로마시민권을 가진 귀족 출신이었습니다. 로마 시민권자는 죄를 짓더라도 함부로 고문하거나 채찍질할 수도 없었고 사형선고를 받더라도 십자가형을 받지 않았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보면 일류대를 나오고 교수에다가 미국 시민권을 가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바울은 자신을 자랑할만한 것들을 많았던 자였습니다. 부럽습니까?

우리에게도 이런 자랑하고 싶은 자랑할만한 지난날의 모습이 다 있지 않습니까? 없나요? 그런 마음은 있잖아요. 세상은 어떠나면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것입니다. 어떻게든 자신을 드러내고 싶고 자랑하고 싶고 그래서 자랑할만한 것을 찾고. 자기가 자랑할 것이 없으면 가문을 자랑하든지 자식자랑을 하며 살든지.. 하여튼 자랑할 것을 찾아요. 그래야 자신을 나타내보일 수 있으니까요.

남들에게 자신을 떳떳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 안에 스스로 부끄럽고 창피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죄를 지으면 감추고 싶고 숨기고 싶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남들이 다 인정해줄만한 것, 칭찬받을 만한 것들을 찾는 것이 아닙니까? 그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자랑거리가 아닙니까? 하나님을 믿고 예수 믿는 우리는 무엇을 가진 자들입니까? 우리는 무엇을 자랑해야 하는 것입니까?

10: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10: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내가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고 사람들 앞에서 시인하지 못하고 증거하지 못하면 주님께서도 나를 증거해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화려한 로마 앞에 볼품 없고 초라한 자신을 보면 한없이 작아지고 부끄러워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가리고 싶고 숨기고 싶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초라한 나에게 복음을 허락하신 것이 아닌가?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안다면 이 복음을 부끄러워할 수 없는 것입니다. 비록 겉 모습은 초라하다 할지 몰라도 우리는 복음으로 이미 구원을 받은 자들이니까요. 그러나 로마는 아무리 멋있고 화려해도 자랑할만한 것을 수도 없이 가졌다 할지라도 그들은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이니까요. 누가 부끄러워해야 하는가?

9:2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지혜로운 자의 지혜도 자랑하지 말고 용사의 용맹함도 자랑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면 다 사라지는 것이니까요. 그것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니까요. 자랑할만한 것이 못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자랑하는 자는 아직 귀한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럼 무엇을 자랑해야 하는가?

9:2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무엇으로 자랑해야 하는가?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자랑하고 하나님은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이 땅에 행하시는 자임을 알았다는 것 이것이 가장 귀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잘 알았습니까? 그것이 가장 귀한 것이라고. 내가 잘 나서 똑똑해서 깨달은 것입니까? 은혜입니다. 은혜로 깨닫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감사한 것이고 그러므로 이것을 자랑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세상의 그 어떤 자랑거리가 있어도 그것은 다 사라지는 것이고 모래 위에 집을 지은 것처럼 결국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난 자신의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그것으로는 만족이 안되고 영혼의 문제가 해결이 안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떡만으로는 살 수 없듯이 표면적으로 아무리 자신을 수식할만한 것을 많이 가지고 있다해도 자랑할만 것을 산더미처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의 영혼의 진정한 만족과 기쁨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구원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만나 회심한 이후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3: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3: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바울은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에는 그전까지 자신에게 유익을 주던 것들, 자랑하며 살았던 것들을 다 해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리스도를 아는데 그것이 해가 되고 방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진 그릇이 가득 채워져 있으면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없잖아요. 이전을 비워야 새로운 것으로 채울 수 있는 것이니까요. 아깝다고 그것을 비우지 않으면 그것을 움켜쥐고 있으면 아무런 변화도 없고 가진 것도 사라집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귀한 것임을 바울은 알았던 것입니다. 이 지식 위에 서 있는 자들입니까?

바울은 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얼마나 귀한 것이고 고상한 것이길래 이전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긴 것일까요?

그리스도를 알게 될 때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먼저 우리는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게 되면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만나고 난 이후에 자신이 누구인지를 내가 무엇을 해야 할 나인지를 알았습니다. 정체성입니다. 말씀공부가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인지 나의 정체성을 알게 됩니다.

1장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합니다.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요한복음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합니다.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내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은 우리의 아빠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를 아들로 자녀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우리는 이 세상을 지으시고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천하를 준다한들 이것과 바꿀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얻게 된 바울이 바라고 원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3: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그 안에서 발견되는 것. 그리스도 안에 자신도 함께 거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시고 어떤 삶을 사신 것인가? 예수님은 하나님께는 아들의 삶을 사셨고 이 땅을 향해서는 구원자의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이 땅을 구원할 구원자라는 것을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시고 어떤 위협과 살기와 멸시 천대와 버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온 몸으로 지켜내셨습니다. 십자가의 마지막 자리에서 결국 다 이루시고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셨습니다.

바울은 주님의 이런 삶을 따라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도 자신도 발견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디에 있어야 합니까? 나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아담이 잃어버린 자리를 주님의 목숨으로 되찾아주신 것입니다. 이제 그 자리를 결코 놓치지 않고 그 안에서 발견되는 자가 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다른 어떤 곳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84:10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비록 문지기로 산다 할지라도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 사는 삶이라면 그것이 가장 값진 삶이 아닐까요?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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