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이어서 로마서를 계속 보겠습니다.
롬3: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앞에서 바울은 죄인된 우리가 어떻게 의롭다 함을 받고 구원을 받게 되었는지를 설명했습니다. 그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속량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열린 것이고 이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선물처럼 값없이 얻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즉 우리에게 자랑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 자랑이 있습니까?
바울은 고린도 교우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고전 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1: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1: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 교우들의 부르심부터가 자랑할만한 것을 가진 자들을 부르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 자랑할 것이 없는 자들을 부르신 것입니까? 자기 자랑이 있는 자들은 먼저는 감사함이 없습니다. 뭘 줘도 아무리 많은 것을 받아도 감사함으로 받지 않습니다. 그런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겠습니까?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들은 자기 자랑거리를 잔뜩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눅 18: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8: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8: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8: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데 자기가 했던 것들을 자랑으로 포장하듯 기도합니다. 자신이 이렇게 여러가지 율법들을 잘 지키고 살아왔다는 것을 말하는 이유가 뭘까요? 나는 일중에 두번을 금식했고요. 또 십일조로 얼마를 드렸습니다. 마치 보고하듯이 왜 이런 기도를 하는 것입니까? 이들안에는 이런 자신들의 율법적인 행위와 공로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자신은 의로워진 것이고 구원을 받은 거라고.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될 때 그렇지 못한 자들을 향해서 어떤 마음을 가지게 될까요? 나는 이렇게 잘 하는데 너는 왜 그 모양이냐? 졍죄와 멸시가 따라오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교회에 가득하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 교회는 어떤 교회가 되겠습니까? 모두가 교만해져서 서로가 서로를 정죄하고 멸시하는 천국이 되어야 할 교회가 지옥이 되지 않겠나?
세상은 어떤 곳입니까? 정죄가 비난과 멸시가 넘쳐나는 곳입니다. 그래서 정죄 받지 않으려고 자신의 의는 나타내 보이지만 자신의 불의는 감추는 곳입니다. 불의가 보이면 당장 정죄하니까요. 잘한 것, 좋은 것, 그러니 겉과 속이 다르고 외식하게 되고.
이것이 지금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바리새인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주님은 이런 자들을 의롭다 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누구를 의롭다 칭해 주십니까?
눅 18: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8: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당시 정말 죄인이라고 정죄 받았던 세리를 주님은 의롭다 칭해주셨습니다. 왜 그런가? 이 세리 안에는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그 죄에 대한 눈물이 회개와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다 죄인일 뿐입니다. 아무리 자기 자랑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 앞에 자랑거리가 되지 못합니다. 왜 입니까? 하나님 말씀을 잘 지킨 것들이 있지만 또 그렇지 못한 것들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죄 짓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속으로 마음으로 생각으로 은밀하게 지었던 수많은 죄들이 우리 안에 있지 않나?
신앙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깨닫게 되는 것은 정말 내가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이고 내가 정말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주님의 은혜가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나임을 알게 됩니다. 자랑이 있다면 그것은 주님에 대한 자랑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자랑할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려 이 땅에 오셔서 물과 피를 쏟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사랑과 그 은혜를 자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고전 1: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1: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주님 안에서 자랑하라고 했습니다. 왜냐? 주님 안에서는 자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어디에도 자랑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랑할 것을 주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렘 9:2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9:2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은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이 땅에 행하시는 분임을 깨달은 것 그래서 이 땅에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 그래서 죄인된 자들이 의롭다 함을 받고 구원함을 받은 것 - 이것 외에 무엇을 자랑할 것이 있습니까?
롬3: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믿음이라는 은총의 통로를 열어주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만이 우리의 자랑이 되는 것임을 사도는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믿음의 법이라고 했습니다. 법은 누구도 깰 수 없고 무효화 시킬 수 없는 것이죠. 이미 그렇게 정해진 것입니다. 변화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뀌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결코 사라지거나 바뀌지 않는다는 것 – 이 놀라운 은총의 세계를 자랑하며 사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