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l Church

 

4: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4: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지난 시간에 이어서 보겠습니다.

앞 부분에서는 아브라함이 어떻게 의롭다 함을 받았는지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육신으로 보면 그는 우상을 섬기고 파는 데라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저주를 받아야 할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 안에 있었던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인해 그가 의롭다 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까?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된다는 것을 유대인들이 낯설어 하지 않고 잘 받아서 그들도 구원을 받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 오늘은 이어서 보면

4: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4: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을 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삯은 당연히 받아야 할 임금이죠. 그것을 은혜로 여기며 감사하는 자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적인 행위를 가지고 살아가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했던 율법적인 선행들을 기록하고 다녔습니다. 내가 언제 어떤 선행을 했는지를 다 기록해서 하나님께 자신들의 선행에 대한 보수로 복을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마치 내가 이만큼 일했으니 보수를 달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빚쟁이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이런 모습은 없습니까? 내가 했던 경건의 훈련들 기도하고 말씀 보고 예배드리고 헌금하고 봉사했던 일들을 가지고 하나님께 내가 이 만큼 했으니 내 기도를 들어주시고 나에게 복을 주어야 한다고 말이죠. 이런 마음 가지고 있으면 자신의 기도가 응답이 되었을 때에도 감사하지 않습니다. 당연한 것으로 여길 뿐이죠.

또 반대로 이번에는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하게 됩니다.

11: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 말은 누가 주님께 무엇인가를 드렸다고 해서 주님의 답례를 받을 수 있느냐? 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주께 뭔가를 드렸다고 해서 내가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해주신 비유를 봅시다.

17:7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17:8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17:9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17: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종이 열심히 일을 하고 와서 내가 일을 열심히 하고 왔으니 나를 위해서 밥을 차려와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주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떤 자세와 어떤 마음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하나님 앞에 어떤 삶을 사셨는지를 비유로 말씀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이렇게 종의 마음으로 가지고 평생을 사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조차도 이렇게 하셨는데 하물며 우리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20장을 보면 포도원의 품꾼 비유가 나옵니다. 여기 보면 11시에 온 자가 어떻게 한 데라니온의 품값을 받게 된 것입니까? 이것은 주인의 놀라운 은총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기막한 비유를 가지고 일하지 않은 자가 받는 은총에 관하여 설명해주신 것입니다.

야곱의 11번째 아들 요셉이 어떻게 장자를 상징하는 채색옷을 입게 된 것입니까? 요셉이 채색옷을 입을 수 있는 자격이나 조건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야곱의 지극한 사랑과 은총으로 되어진 것일 뿐입니다.

9장에 죄인이었던 세리 마태를 제자로 삼아주시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죄인이었던 세리가 어떻게 주님의 제자가 된 것입니까? 반면에 당시 의롭다 여겼던 바리새인들은 왜 주님의 제자가 되지 못했습니까?

18장에 보면 세리와 바리새인의 기도가 나옵니다. 이 기도를 보면 세리는 가슴을 치며 회개합니다.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불쌍히 여겨달라며 눈물로 기도합니다. 이것은 아마도 세리 마태의 이야기일지 모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은 자신이 죄인임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의로운 행위들만 앞세우며 하나님 앞에 자랑하듯 기도합니다. 주님은 누구를 의롭다 하셨습니까? 바리새인이 아니라고 세리였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언제 위기에 빠집니까? 하나님의 은총보다 나의 행위와 공로가 더 우선할 때,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앞에 누구도 자랑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이 땅의 그 누구도 아무리 훌륭한 대통령이 와도 교회에 오면 다 죄인인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시인할 때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과 은총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

3: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3: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3: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3: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바울은 이전의 자기 공적과 자기 자랑은 다 쓸데 없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누가 뭐래도 바리새인중의 바리새인이며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바울은 그 모든 것을 다 해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왜냐면 그 자랑이 하나님의 사랑을 가리기 때문입니다. 은혜로 은혜로 은총을 은총으로 받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제 자신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주님의 긍휼과 사랑으로 말미암아 세워진 나라고 했습니다. 이것 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바울의 이 마음을 가지고 신앙의 길을 가기 원합니다. 모든 것이 은혜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것. 우리에게 주어진 것. 그래서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주님의 놀라우신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알고 항상 감사함으로 주의 길을 따라사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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