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4:1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4: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4: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4: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4: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에덴 동산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죄를 지은 자가 하나님이 계신 곳에 머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요15장에 보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내 안에 거하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이미 주께서 제자들을 진리의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요15: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만일 깨끗함을 받지 않았다면 주님 안에 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자복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함으로 용서함을 받을 수 없었고 따라서 에덴에 머물러 살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자녀를 낳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창4:1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우리에게 자녀가 주어지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뭘 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은혜로 주어진 우리의 자녀들을 보면서 먼저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나의 자녀가 아닌 하나님의 자녀로서 키워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왕에게 기름을 부어 왕이 되게 하고 수십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려온 이스라엘의 너무나 귀한 사사였던 사무엘이 어떻게 이렇게 남아질 수 있었나?
그것은 그의 어머니였던 한나의 믿음의 기도가 있었고 그의 믿음의 결단과 의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런 자들 믿음을 소유한 자들이 되어 우리의 자녀들에게 이 믿음을 줄 수 있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4: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4: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4: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두명의 아들을 낳게 되었는데 첫째는 가인이었고 둘째는 아벨이었습니다. 이들은 각각 농사를 짓고 양을 치는 삶을 살았습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이들이 각각 얻은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은 받으셨지만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이유가 있겠죠. 우리는 그 이유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가인은 동생의 제물만 받으시고 자신의 것은 받지 않으시므로 화가 났습니다.
4: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하나님께서 화를 내는 가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네가 어찌하여 분노하고 화를 내느냐? 라는 것입니다. 그럴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고 아벨의 제물만 받았다고 해서 화를 낼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라고 하셨습니다. 가인이 선을 행하면 어떤 상황이 온다 할지라도 낯을 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말씀 따라 살고 진리를 따라 선을 행하고 산다면 누구를 만나더라도 어떤 자리에 서게 된다 할지라도 부끄럽지 않고 당당하지 않겠습니까? 잘못한 것이 없으니까요.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하나님께서 내 것이 아닌 동생의 제물만 받으셨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먼저 이렇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왜 하나님은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을까요?
가인의 제물은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없는 제물이었던 것은 아닐까요? 사실 가인이든 아벨이든 하나님께서 이들의 제물을 받으실 이유는 없었습니다. 왜냐면 이들은 여전히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회개를 하고 용서함을 받았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만일 이들이 회개를 하고 용서함을 받았다면 이들은 에덴으로 다시 복귀를 했을텐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죄인의 자녀이기 때문에 이들이 하나님께 무엇을 드린다 한들 하나님께서 그것을 받으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비록 동생이지만 아벨의 제물이라도 받아주셨다면 그것은 너무나 감사하고 기뻐할 일이 아닙니까? 그것이 비단 동생에게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라 이것은 형 가인에게 동일하게 해당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이들의 남남입니까? 이들은 형제라고. 형의 일이 동생의 일이 되고 동생의 일이 형의 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들은 한 가족이고 한 형제니까요. 지금의 문제가 뭘까요? 다 나뉘어져 생각하고 남남처럼. 서로 간에 어떤 유대가 없고. 각각 개인적으로.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창조가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 서로가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판 모르는 사람이라도 그들과 나는 직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가 잘되면 함께 기뻐하고 그가 안되면 함께 슬퍼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11:16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11:17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지금의 세대의 모습이 이렇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들입니다. 몸이 각각 따로 따로 살아갈 수 있습니까? 아무리 작은 한 부분이 아프면 몸 전체가 고통을 받고 몸 전체가 아픈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하나로 지어진 자들이라는 것을 알고 비록 언어가 다르고 국가가 다르고 지역이 다르다 할지라도 주님 안에서 하나임을 기억하고 한 몸을 이루어 내는 것. 이것이 이 세계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먼저는 우리 안에서 어떤 상황속에서도 나누어지지 않고 분열되지 않고 하나를 이루고 한 몸을 이루는 우리의 가정, 우리의 교회, 우리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 이어서 계속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