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고후 5: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5: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5: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오늘은 천국의 여덟가지 복 중에 일곱번째 복을 보려고 합니다. 복중의 복은 뭘까요? 천국의 여덟가지 복이 다 중요하지만 특별히 오늘 이 일곱번째 복은 열매의 복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열매를 맺어야 하는 열매 중에서 가장 실질적인 열매가 이 화평의 열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화평하지 않고 화목하지 않고 즉 불화한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가화만사성이라는 말이 있듯이 가정이 화평해야 일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나라도 그렇습니다. 나라 안에서 서로 화목하지 못하고 갈등이 있고 불화가 있으면 발전은 커녕 점점 후퇴하다가 결국은 다 망하는 것입니다. 훌륭한 리더는 이런 갈등을 없애고 불화를 없애고 화목하게 할 수 있는 자일 것입니다.
자, 그럼 우리가 어떻게 화평하고 화목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 화목하신가요? 화목은 행복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화목해야 행복합니다. 행복하십니까? 우리는 누구와 화목해야 할까요?
사람은 혼자 살 수 없습니다. 많은 관계성을 맺고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창1:28절을 보면
창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크게 세가지의 관계성을 맺고 태어납니다. 가장 먼저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그리고 사람들과 그리고 만물과 관계를 맺습니다. 모든 관계성의 시작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난 이후에 땅이 저주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저주 받은 땅에서 아무리 열심히 수고하고 고생해도 얻을 수 있는 것은 저주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없이 내 힘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 그것이 안됩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우리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살 수가 없는 자들입니다.
기독교는 구원의 종교라고 하는데요. 구원이라는 것이 무엇이고 왜 필요하게 되었을까요? 우리가 태어나면서 맺게 되는 이 세가지의 관계성 -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만물과의 관계성에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과 트러블이 생긴 것입니다.
관계성에서 최악의 상태는 단절되는 것입니다. 타락은 이 관계성이 끊어진 것입니다. 나무가 뿌리와 단절이 되면 열매를 맺을 수가 없게 됩니다. 세례요한의 말씀에 의하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어떻게 됩니까?
마3: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면 우리는 좋은 열매를 맺을 수가 없게 됩니다. 하나님과 화목해야지 불화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신기하게도 하나님과 화목하면 사람들과도 또 만물과도 사이가 좋아집니다. 화목하게 됩니다.
그런데 반대로 하나님과 관계가 안 좋으면 이상하게도 사람들과도 만물과도 관계가 좋을 수가 없습니다. 한 가정에서도 부모님과 사이가 좋으면 형제들과도 사이가 좋지만 부모님과 사이가 안 좋고 불화하면 형제들끼리도 늘 싸우고 미워하고 관계가 좋지 않습니다.
부부간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좋은 부부 관계를 만들고 싶다면 화목한 가정을 만들기 원한다면 먼저는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화평하게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화평할 수 있을까요? 이것을 알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왜 화평하지 못할까?를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면 화평할 수 있는 길도 보입니다.
우리가 서로 왜 싸울까요? 결국은 소유의 문제 때문입니다. 나는 적게 가졌거나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있는데 얻지 못하게 되면 일단 기분이 안 좋습니다. 창3장은 죄가 시작되는 이야기인데 죄의 시작이 뭡니까? 하나님이 선악과를 못 먹게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부러 인간은 못 먹게 했다는 것이죠. 이것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을 불화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창4장에서는 가인과 아벨의 불화가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고 아벨의 제사만을 받으셨습니다. 이 때 가인이 느낀 감정은 내가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창25장부터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이들의 불화의 원인은 무엇이었습니까? 에서가 볼 때 자신은 복을 받지 못했고 야곱은 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이 받은 그 복이 내거였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모든 불화는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와의 대립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많이 가진 자들을 향한 가지지 못한 자들의 시기질투입니다. 시기질투는 잘못된 감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20장에 예수님이 말씀해주신 포도원의 품꾼 비유가 나옵니다. 이것은 천국비유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천국을 만들어 가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천국을 만들어가는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먼저 온 자와 나중 온 자의와 불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먼저 온 자들이 나중 온 자들을 향해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왜 미워합니까? 자신들은 일을 많이 했는데 적게 받았고 나중온 자들은 일을 적게 했는데 많이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이런 마음은 없습니까? 자신이 한 것에 비해서, 노력한 것에 비해서 수고한 것에 비해서 적게 받았다는 생각. 그것이 돈이든, 사랑이든, 권력이든, 지식이든 뭐가 됐든지 간에 나는 적게 받았고 부족하고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 온 사람은 더 많이 받은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또 그들이 받은 것이 마치 내 것을 빼앗아서 나중에 온 사람에게 준 것처럼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을 가만 내버려둘 수 있겠습니까?내것이었으니 어떻게든 죽여서라도 빼앗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21장의 이야기입니다.
마 21:38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 하고
21:39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그러니 이 불화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자,, 야곱은 어떻게 했습니까? 자신이 종살이 해서 받은 복을 에서에게 나눠 주었습니다. 이로 인해 야곱이 자신의 복을 빼앗아 간 것이 아니라 자신을 대신해서 야곱이 대신 고생한 것이었음을 알고 아름다운 화해의 역사를 열어냈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가난한 우리들을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생명까지도 다 내어주셨습니다.
불화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눠주면 됩니다. 자기 것을 주면 됩니다. 그런데 누가 자기 것을 주겠습니까? 누가 자신의 것을 내어줄 수 있을까요? 나는 가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아무것도 내어줄 수 없습니다. 내가 많은 것을 가진 자임을 아는 자만이 내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주님이 겉으로 볼 때 가진 것이 무엇이 있었습니까? 제자도의 말씀을 보면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둥지가 있지만 인자는 머리둘이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머리 둘곳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가지고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물질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1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가진 것은 하나님의 사랑 뿐이었습니다. 이 사랑을 온 몸으로 목숨을 다 해서 우리에게 나눠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나눠 받은 자들이고 그렇기에 우리도 이것을 나눠줘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베드로는 돈을 구하던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에게 무엇을 주었습니까?
행전 3: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우리는 무엇을 가진 자들입니까? 사도들처럼 우리도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맞습니까? 주의 이름의 능력을 알고 그 능력으로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자들인가? 이것이 아니고서는 이것을 알지 못하고서는 이 가치를 모르서는 전할 것이 없고 나눠줄 것이 없습니다. 왜냐면 은과 금이 우리에게는 없는 자들이니까요. 그리고 사실 세상이 은과 금을 원하는 것 같은데 그것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무엇을 원하는가? 돈입니까? 물질입니까?
지금의 시대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갈의 시대는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요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의 시대라고 했습니다.
무엇이 불화했던 자들을 다시 화목하게 할 수 있는가? 무엇을 이 시대의 갈등과 반목과 다툼과 미움의 모든 것들을 이기고 하나되게 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까? 우리가 어떻게 이 한자리에 있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과 불화했던 우리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화목하게 했기 때문이 아닙니까?
정말 우리가 원하는 것은 화목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까? 화목은 행복과 직결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잠언서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잠 17:1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사실 우리는 정말 많은 것을 가진 부자들입니다.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고 사는 것 뿐입니다. 가장 불행한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을 모르고 가지지 못한 것만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가진 사람인지를 잘 알기를 바랍니다.
화목할 때 화는 벼화, 입구로 되어 있습니다. 쌀, 양식과 입, 즉 말씀 – 육적인 양식으로는 살 수없다고 하신 말씀처럼 우리는 말씀의 양식이 있어야 살 수 있고 화목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말씀으로 먼저는 하나님과 그리고 사람들과 화평케 된 자들입니다. 이렇게 화평케 된 자들만이 또 불화한 자들을 화평케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화평케 된 자들의 사명입니다.
고후 5: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5: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5: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바울은 자신에게 주신 화목의 직분을 가지고 하나님과 불화한 자들을 화목하게 했습니다. 화목의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를 닮아 화목하게 할수만 있다면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사도의 이런 삶을 닮아 사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