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1:1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11: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11: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11: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11:5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11: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11: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11:8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11: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오늘은 원역사라고 부르는 창세기1장에서 11장까지 중에서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바벨탑 사건에 관해서 함께 보려고 합니다.
창11:1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처음에는 언어가 하나이고 말이 하나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그러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합이 안되고 하나가 안되는 것은 언어가 달라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언어가 같아도 말이 안 통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런 경우가 대부분인데 왜 그럴까요? 서로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보는 것이 다르고 원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 속에 있는 높아지고자 하고 섬김 받으려고 하는 교만의 죄 때문입니다. 아무리 마음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뜻이 달라도 서로를 배려해주고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으면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만의 죄가 있으면 자신의 생각과 뜻을 절대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에 연합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노사간의 갈등이 생기면 서로의 입장을 조율해서 타협을 해서 맞춰가야 하는데 자신들의 생각과 뜻을 굽히지 않으면 타결은 없고 협치가 안되고 분쟁만 생길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처음에 만드셨던 세계는 하나의 말로 서로가 잘 통하는 세계였다는 것을 성경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계를 다시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요? 먼저는 왜 하나였던 세계가 나눠지게 되었는가? 그 원인을 정확히 알아야겠습니다.
11: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11: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11: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같은 언어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만나서 무엇을 했는가? 벽돌을 굽고 역청으로 성읍을 건설하고 탑을 만든 것입니다.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쌓아 우리의 이름으로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고 한 것입니다. 자 하나하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이들이 탑을 하늘에 닿게 쌓으려 했다고 했습니다. 왜 쌓으려 한 것일까요? 이들은 자신들도 하나님처럼 높아지려고 하늘에 닿는 탑을 쌓은 것입니다. 나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바라는 것. 내가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탑을 놓게 쌓아도 그것이 하늘에 닿을 수 있는 것인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인간은 땅에 있는 존재입니다.
자 본문을 보면 우리 이름을 내자고 합니다. 탑을 높이 쌓아서 결국은 자신들의 이름으로 높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높으신 이름은 무엇입니까? 예수그리스도 그는 누구보다도 가장 낮아지심으로 하나님께서 주의 이름으로 가장 높은 이릉이 되게 하셨습니다.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인간은 누구나 높아지고 싶고 높아지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높아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내가 나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높이고 내가 주님을 높이고 내가 형제 자매를 높이고 서로를 높여줄 때 내가 높여드린 자들이 또 나를 높여줌으로 내가 높아지게되는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높여주려면 내가 낮아져야 합니다. 낮아지지 않고 누구를 가를 높여줄 수 있는가? 불가능합니다. 주님은 자신이 가장 낮아지심으로 하나님을 높여드렸고 또 우리를 높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그 낮아지심으로 하나님께서 주님을 가장 높여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길입니다. 주님은 그 길을 따라 가장 낮아지심으로 가장 높으신 이름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이 길을 따라 갈 때 높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높아지려고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서로를 높이려면 내가 낮아져야 하고 내가 낮아지면 하나님께서 나를 높여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길입니다.
그런데 보라. 하나님과 멀어진 자들, 하나님 없이 사는 자들, 복음을 알지 못하는 자들의 모습을 보라. 어떻게 높아지려고 하는가? 자신들만의 탑을 높이 쌓아서 자신의 이름으로 놀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이런 모습은 없는가? 알고보면 스스로 자기 이름 높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뭘하나? 벽돌을 굽는다는 것입니다. 벽돌이 많아질수록 높이 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보면 이들이 벽돌로 돌을 대신한다고 했습니다. 돌을 쌓아서는 자기가 원하는 만큼 높이 쌓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편편하지가 않으니까요. 조금 쌓다가 무너지고 또 쌓으면 무너지고 그래서 편편한 벽돌, 높이 쌓을 수 있는 벽돌을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도 돌을 대신해서 벽들을 굽고 있는 모습이 있습니다. 돌은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것이고 벽돌은 인간이 만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가지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따라가면 절대 자신을 높일 수 없습니다. 낮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높아지려고 하면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가지고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그것을 만들어 자신이 원하는대로 살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심으로 벽돌을 굽고 있는 것입니다.
벽돌이 쌓여지고 많아질수록 우리의 마음도 높아집니다.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고 지금도 만들고 있는 벽돌은 무엇입니까? 나를 높여주는 그래서 내가 의지하고 있는 벽돌은 무엇입니까? 이것이 많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보고만 있어도 흐뭇해집니다. 그런데 반대로 이것이 별로 없으면 어떨까요?
내가 왜 우울한가? 내가 왜 만족이 안되나? 내가 왜 짜증이 나고 회가 나고 불평과 원망이 생기나? 이런 벽돌이 잘 만들어지지 않아서 그래서 내가 원하는 만큼의 벽돌을 내가 보유하고 있지 못해서. 불안하고 조급하고 안되니까 짜증나고 화가 나고 그렇지 않는가? 그러나 반드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만든 벽들이 얼마나 허망하고 거짓된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자, 한자어로 인위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의 행위라는 뜻인데 좋은 의미로 쓰이지 않습니다. 사람의 행위가 왜 좋은 의미가 되지 못하나? 거짓위라는 한자를 보면 사람과 행위 두 자로 되어 있습니다. 즉 사람이 하는 행위가 거짓이라는 말입니다. 왜 그런가? 인간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속에 죄가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속에 무슨 죄가 있나?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변화되려면 내 안에 있는 거짓된 모습을 발견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로 살고자 하는 죄적인 모습이 발견해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말씀과 멀어져서 말씀과 반대로 거꾸로 살았나? 말씀은 비우고 낮아지라 하지만 얼마나 높아지려 하고 채우려 하는가? 말씀은 섬기라 하지만 얼마나 우리가 섬김 받고 싶어하는가?
말씀의 위대한 능력은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말씀을 잘 알아야 합니다. 10년, 20년을 신앙생활 해도 말씀을 모르면 신앙에 변화가 없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공부해보면 이 안에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이 있고 우리가 복 받을 수 있는 길이 있고 또 우리 안에 뭐가 문제가 있는지, 죄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정말 중욯나 것 - 왜 우리가 구원을 받아야 하는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왜 예수가 필요한지. 그리고 구원 받은 자가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성경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말씀을 피상적으로만 보지 말고 문자적으로만 보지 말고 그 안에 깊은 세계를 봐야 합니다. 여러분, 말씀 공부를 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가장 먼저 로마서를 배웁니다. 로마서 안에 복음의 아주 기본적인 모든 진리가 다 들어 있고 이것을 모르고 신앙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로마서만이라도 꼭 말씀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다음주에 29,30(금, 토) 새신자를 위한 수련회가 서울에서 있습니다. 이 때 로마서1장부터 5장을 깊이 보게 됩니다. 꼭 참석하서서 하나님의 말씀의 깊은 은혜의 세게를 경험하고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말씀 앞에 서면 우리 안에 거짓된 모습, 죄적인 모습이 다 밝혀집니다. 숨길래야 숨길 수 없고 감출래야 감출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것은 우리가 입이 있어도 아무 할 말을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변명할 수가 없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내가 못한 것 내가 죄지은 것에 대해 잘못한 것에 대해서 변명하거나 핑계 대려 하지 말고 어차피 안 통하니까요. 아직 나에게 남은 시간을 가지고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으로 열매 맺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계속 보겠습니다.
11:5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우리에게 귀한 것을 맡기시고 일정 기간 하게 내버려두십니다. 달란트 비유도 보면 주인이 종들에게 달란트를 맡기고 타국으로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서 회계를 합니다. 여기서도 때가 되어서 하나님이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그것을 보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잘했으면 칭찬을 하실 것이고 잘못한 것이 있다면 심판을 하실 것압니다. 늘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생각하고 사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11: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지금이 아니면 막을 수 없다고 하십니다. 자, 우리가 아무리 죄를 짓고 뭔가를 잘못했다 해도 다시 돌아올 수 있고 다시 회복할 수 있는 때가 있습니다. 아직은 막을 수 있는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를 넘기고 나면 뭔가 만들어지고 나면 이제는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바로 그런 곳이었습니다. 아무리 사람들의 죄가 극에 달했어도 의인 열명만 있었더라면 살릴 수 있었는데 이제 그 수가 안 채워지니 결국은 멸할 수 밖에 없는 지경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도 이제는 어찌할 수 없는 세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사탄 마귀가 우리를 종으로 잡고 있다가 우리가 기준을 지키고 어느 선까지 올라가면 이제는 사탄 마귀가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뭔가 우리 안에 귀신 들린 것처럼 스스로 마음이 제어가 안되고 나도 원치 않는 말을 하고 행동을 하고 죄를 짓는 모습에서 벗어나 이제는 도저히 마귀가 손을 쓸 수 없는 수준이 되어야겠습니다.
11: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11:8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참 많은 것을 것을 생각하게 말씀입니다. 자, 지금 하나님께서 탑을 쌓는 것을 막으신 것입니다. 왜 막으신 것입니까? 그것이 잘못된 것이니까요. 우리의 지식으로 하나님을 판단하면 안되고 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말씀하시고 우리는 들어야 하는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아무리 바른 길이라도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면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한 것이 아니라면 인간이 아무리 화려한 도시를 만들고 튼튼한 성벽을 쌓고 높은 탑을 만들어도 결국은 하나님께서 막으신다는 것입니다.
잠 16:25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내가 보기에 바른 길이라고 해서 바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보실 때 바른 길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알기 위해서 하나님 말씀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르지 않은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막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입니까? 누가 이들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밖에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막으시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이들이 만든 탑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이 더 이상 탑을 쌓을 수 없도록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셔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이십니다. 말만 통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뭔가를 하려고 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말이 잘 통해야 합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같은 언어를 쓴다고 해서 말이 잘 통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잘 통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마음이 잘 통할 수 있는가?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을 때 마음이 잘 통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고 자신의 이름을 높이려고 하면 결국은 안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혹 우리 안에 우리 가정에서도 서로를 볼 때 뭔가 통하지 않고 답답한 모습이 있다면 우리 스스로를 먼저 돌아볼 수 있어야겠습니다. 내가 더 높아지려고 한 것은 없는지. 내 이름을 높이려고 한 것은 없는지.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가려 한 것은 어닌지,
이런 모습으로는 안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막으시는 것입니다. 모세에게 세가지 구원의 권능을 주시고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라고 하신 하나님께서 모세가 숙소에 있을 때 그의 길을 막으시고 그를 죽이려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가라고 하신 하나님께서 왜 막으시고 막으실 뿐 아니라 죽이려고 까지 하시나? 죽음이 아니고서는 쉽게 바뀔 수 없는 모습이 모세 안에 있었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토록 모세 안에 변화되어야 하고 바뀌어야 할 심각한 모습이 모세 안에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엇던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모세의 아들이 할례를 받지 않았던 것입니다. 자기 아들도 할례하지 못한 자가 어떻게 자기 백성들을 할례시킬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안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죽음으로 막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면 하나님을 반드시 우리를 막으십니다. 그렇게 가면 안되는 것이고 열매 맺을 수 없는 것이고 무너지는 것이니까요. 우리를 막으신다는 것. 이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관심이 없다면 그가 뭘 하든지, 관심이 없고 내버려둡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고.
11: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세상은 다 지기를 위한 자기 이름을 높이기 위한 바벨탑을 쌓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것으로 자신을 높일 수 없습니다. 그것으로 자신이 높아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높여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높일 수 없는 것으로 자기를 높이려고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이런 바벨탑과 같은 것은 없는가? 그것을 쌓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서 주님께서 보이신 낮아짐과 섬김의 길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주님,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오직 낮아지시고 섬기시며 죽기까지 십자가를 지셨던 주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사오니 주여, 우리 안에 우리를 높이려는 바벨탑과 같은 모습이 있다면 주여, 우리의 빗나간 모습을 깨닫게 하여주시고 오직 주님의 말씀에 힘입어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그리스도만을 따라 서로를 높이고 섬기는 자들이 다 되게 하여주옵소서.
봉헌기도 : 은혜로우신 주님, 지난 한 주도 함께 하시고 지키시고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며 우리의 정성과 마음과 뜻을 담은 귀한 예물을 드리오니 주님 기뻐받아주시고 주의 선한 일에 귀히 쓰임 받게 하시고 에물드린 모든 손길위에 성령의 크신 은혜를 가득 부어주소옵소서. 그리하여서 낮아지심으로 높아지신 주님의 삶의 길을 따라사는 우리 모두가 다 되게 하여주옵소서.
축도 :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의 능력과 성령님의 교제하심과 교통하심과 충만하심이 이 예배에 참석한 모든 이들 위에 이들의 가정과 이들의 모든 일들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하시기를 축원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