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4:18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4: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4:20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4:21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4:22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오늘은 설날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다 복을 받기 원하는데요. 복 중의가장 큰 복은 무엇일까요? 성경의 모든 말씀은 복과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창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처음으로 말씀을 하실 때에도 먼저 복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한번 볼까요?
창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복이 없이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가 말씀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에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졌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곧 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아들에게도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 (창9:1절)
또 아브라함에게도 뭐라고 하셨나?
창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단순히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복을 주시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제는 아브람을 통해 복을 받을 수 있는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이렇게 하나님의 복을 받고 하나님의 복을 나눠줄 수 있는 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은 먼저 우리를 부르십니다.
자, 오늘 말씀은 네명의 제자를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두명 두명 이렇게 나오는데 먼저 베드로와 안드레가 먼저 주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마4:18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4: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4:20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고 부르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 두 사람이 나옵니다.
4:21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4:22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야고보와 요한이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셨습니다. 왜 마태는 이런 기록을 해 놓은 것일까요? 주님의 부르심이라는 것은 분명한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냥 이유 없이 목적 없이 부르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기 위해서 이들을 부르셨다는 것을 마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부르심 또한 다를 수 있겠습니까?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을까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부르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소망은 무엇일까요? 어부가 되게 하시려고. 어떤 어부입니까? 사람을 낚는 어부죠.
어부는 두가지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물을 던저 고기를 잡든지 고기를 잡을 수 있는 그물을 수리하든지.
우리 공동체의 사역은 크게 보면 고기를 잡는 사역과 그물을 깁는 사역 두가지가 있는 것입니다. 이 두 사명을 어떻게 잘 감당하고 잘 이루어 낼 것인가? 우리는 이것을 고민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부르심에 대한 분명한 자기 이해와 자기 사역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어떤가? 부르심에 대한 분명한 자기 이해가 있습니까? 하나님은 왜 나를 부르셨나? 예수님은 먼저 자기 안에 흔들리지 않는 정체성이 있었습니다.
요3: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요8: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것과 그러므로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사역에 집중하셨습니다.
마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주님은 이런 마음으로 높아지려 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낮아지시고 비우시고 섬기시며 대속과 속죄의 삶을 사시며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는 위대한 사역을 이루어 가신 것입니다.
눅19: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사도 바울 또한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사도의 정체성을 가지고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한 거룩한 삶을 살아갔습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의 공통점이 뭘까요? 앞에서 말했듯이 분명한 자기 정체성이 있었고 그리고 자기 사역에 대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자기 삶에 대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랑의 부르심입니다. 즉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부르시고 세우셔서 사명을 주시고 사역을 이루어 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또한 하나님의 사랑의 부르심이라는 것을 알고 우리에게 맡기신 귀한 사역을 사랑하고 우리의 삶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자신의 자리 자신의 사역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사랑하지 않으면 한 눈 팔게 되고 그 자리를 버리고 떠날 수 있습니다. 타락한 천사의 죄목이 뭐라고 배웠습니까? 자기 지위와 자기 처소를 떠난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 떠났을까요? 자기 삶을 사랑하고 자기 자리를 사랑하고 자기 사역을 사랑했다면 버리고 떠났겠습니까?
세상에서 어떤 사람이 가장 불행한 사람일까요? 자기 것을 사랑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고 탐내고 더 나아가 시기질투 하는 사람. 그럼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이겠습니까?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자기 일을 사랑하고 자기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정말 행복한 사람들이 다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 각 사람에게 주신 너무나 귀한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자들입니다. 자신이 가진 것들을 귀하게 보시고 그것에 감사하며 그것을 사랑할 수 있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육신의 몸도 그렇습니다. 자기 몸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그런데 자기 몸을 귀하게 안 보면 어떻게 됩니까? 열등감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우리는 열등감을 가질 수 없지요. 왜 그런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의 단 하나뿐인 걸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두 명도 없다고.
쌍둥이도 다 다릅니다. 이 지구 상에 이 역사 안에 나란 사람은 오직 한 사람 뿐인 것입니다. 나와 같은 사람이 없는데 누구랑 자신을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언제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하고 원망할까요? 남들과 비교할 때입니다. 비교하는데 꼭 자신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 더 많아 보이고 더 좋아보이는 사람, 더 능력이 있고 실력있는 사람과만 비교합니다. 자기보다 못하고 부족한 사람하고는 비교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삶에 대한 만족도가 계속 떨어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좋은 것들 많이 가진 것 같은데 자신은 그렇지 못한 것처럼 보이니까요. 이렇게 남의 떡이 커 보이니 감사함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모든 것이 다 안 좋아보이고 불평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거울로 자기 얼굴을 보면서 눈도 맘에 안들고 코도 그렇고 입도 귀도 머리카락도 머리크기도 피부도 모든 것이 다 싫어집니다. 맘에 안듭니다.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그렇죠. 자기 가족도 그렇고. 이렇게 싫어지면 어떻게 인생을 살수 있겠습니까?
병에 물이 반이 들어있는데 어떤 사람은 반 밖에 없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이나 있다고 감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똑 같은 양인데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그것이 불평하고 원망할 일이 되기도 하고 감사하고 만족할 일이 되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남보다 부족한 것이 있다면 남보다 더 뛰어난 것이 반드시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미 가진 것에 감사하고 만족하고 사랑할 수 있는 올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행복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가사 아시죠?
화려하지 않아도 정결하게 사는 삶
가진 것이 적어도 감사하며 사는 삶
내게 주신 작은 힘 나눠주며 사는 삶
이것이 나의 삶의 행복이라오
눈물 날 일 많지만 기도할 수 있는 것
억울한 일 많으나 주를 위해 참는 것
비록 짧은 작은 삶 주 뜻대로 사는 것
이것이 나의 삶의 행복이라오
이것이 행복 행복이라오
세상은 알 수 없는 하나님 선물
이것이 행복 행복이라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행복이라오
여러분,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선물 중에 가장 귀하고 가장 가치롭고 가장 소중한 선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떡떼임 시간에 얘기해주시기 바랍니다.
고기를 잡는 어부들이었던 자들을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셨습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와 안드레 요한과 야고부를 부르셨을 때 이들이 엄청난 실력과 능력을 보고 부르셨을까요? 베드로와 안드레가 고기를 너무나 잘 잡고 요한과 야고보가 찢어진 그물을 너무나 훌륭하게 잘 보수하는 그런 실력을 보시고 이들을 부르신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의 어떤 모습을 보시고 부르신 것입니까? 이들이 고기를 잘 잡든 못 잡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늘도 쉬지 않고 성실하게 그물을 던지고 또 그물을 깁는 모습을 보시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까?
이들은 어부였으니까요. 늘 그물을 던져야 하고 또 그물을 기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기 싫다고 맘에 안든다고 불평하고 원망했더라면 이들이 그물을 던졌겠습니까? 그물을 보수하겠냐고. 이들이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주님을 만났겠습니까?
그런데 이들은 오늘도 바다에 나와 그물을 던지고 또 그물을 수리하고 반복적이만 꾸준히 자기자리를 지키고 자기 일을 해왔던 것입니다. 자기 삶을 사랑하지 않고서 이렇게 할 수는 없잖아요. 몇번 해보고 힘들고 하기 싫으면 당장 그만두려 하지 않습니까?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이들은 자기 삶에 대한 사랑이 있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와 사랑하는 아버지와 함께 늘 바다와 나와 고기를 잡고 그 잡은 고기를 가지고 사랑하는 가족들을 먹이고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 – 그것만으로 이들은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며 살지 않았을까요? 주님은 이들의 그런 모습을 보시고 이들을 부르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감사와 만족과 자기 삶에 대한 사랑이 있는 자에게 귀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맡길 수 있고 주님의 어린 양들을 맡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들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배와 그물과 부친을 당장 버려두고 주님을 따라가잖아요.
4:20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4:22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이들이 자기 삶을 싫어해서 버리고 떠났겠습니까? 잘 되었다고. 너무 하기 싫었었다고. 그래서 당장 버리고 제자가 되었겠습니까? 아니죠.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고 주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어떤 믿음입니까? 나보다 더 크고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내가 사랑하는 자들을 더 잘 사랑해주시고 내가 보살피고 내가 지켜야 할 자들을 더 잘 보살펴주시고 더 잘 지켜주시리라는 믿음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주님을 따라간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이 뭔지 아십니까? 사랑은 맡기는 것입니다. 믿음도 맡기는 것입니다.
요21장에 보면 부활하신 주님이 베드로에게 주님의 양들을 맡기시잖아요. 주님이 자기 양들을 먹이기 싫어서 베드로에게 맡기시는 것입니까? 아니죠. 이제는 떠나야 하니까요. 이제는 돌아가야 하니까요. 베드로를 믿으시고 그를 사랑하니까요. 그에게 주님의 모든 양을 맡기시고 부탁하시고 떠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를 믿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면 어떻게 맡기고 떠나시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누구나 언젠가는 사랑하는 자들, 사랑하는 것들을 다 맡기고 떠나야할 때가 옵니다. 떠나고 싶지 않아도 원치 않아도 떠나야 할 때가 오잖아요. 그것을 우리가 결정할 수 있습니까? 때가 되면 누구나 다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맡길 수 있겠습니까? 정말 믿을만한 사람, 정말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 누구에게 맡길 수 있을까요?
우리의 자녀도 그렇죠. 언제까지 우리가 맡아서 돌보면서 갈 수 있을까요? 나이가 들고 힘이 빠지고 병이 들면 자기 몸 하나도 책임지기 힘들어지는데 말이죠. 베드로 안드레 요한 야고보가 이렇게 주님의 말씀에 곧 순종해서 따라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 주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떠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별기도에서도 보면 주님은 이제 떠냐야 하는데 사랑하는 제자들을 누구이게 맡깁니까?
요17: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공동번역] 17:11 나는 이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돌아가지만 이 사람들은 세상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나에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이 사람들을 지켜주십시오. 그리고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주십시오.
아버지께서 지켜달라고 기도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자신의 영혼까지도 모든 것을 아버지 하나님께 맡기셨습니다.
눅23: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공동번역]눅23:45 예수께서는 큰소리로 "4)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하시고는 숨을 거두셨다. 시편 31:5.
[현대어성경]눅 23:46 예수께서 큰소리로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기나이다"하시고 숨을 거두셨다.
여러분, 우리도 주님을 따라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사는 복된 우리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