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l Church

 

일어나라 함께 가자

26: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26: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26: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26: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26:42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26:43 다시 오사 보신즉 저희가 자니 이는 저희 눈이 피곤함일러라

26:44 또 저희를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26:45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

26:46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오늘은 주님의 겟세마네의 기도를 함께 보려고 합니다. 겟세마네는 채유소입니다. 올리브 기름을 짜는 곳이었습니다. 올리브 기름을 가지고 뭘 할까요? 여러가지 용도가 있는데 그 중에서 특별히 중요한 것은 기름을 부어 왕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다윗을 찾아가 기름을 부어 왕이 되게 한 것처럼 주님은 이 땅에 왕으로 오신 것인데 누가 주님께 기름을 부어 왕이 되게 했는가? 사실 그리스도를 기다렸던 제사장들도 그렇게 하지 못했고 주님의 제자들 또한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성경에는 향유 옥합을 깨뜨려 주님께 부여드린 한 여자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을 뿐입니다.

, 지금 주님은 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무엇을 하시는 것입니까?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26: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26: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26: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주님께서 기도하는 동안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주님은 무엇을 놓고 기도하시는 것입니까?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왜 죄 없으신 주님이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주님의 죄값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죠. 빌라도와의 심문 과정에서 성경은 무엇을 기록하고 있습니까?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했던 말이 있습니다. 나는 그에게 죄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19:6 대제사장들과 하속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가로되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노라

빌라도의 말처럼 주님은 죄가 없는데 즉 주님의 것이 아닌데 왜 십자가를 지시려고 하는가? 이것은 누구의 십자가인 것입니까? 임자 없는 십자가입니까? 아니잖아요. 이 십자가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누가 달려야 하는 것입니까? 십자가 형을 받아야 하는 죄수들의 죄목은 무엇이었습니까? 대제사장들이 주님을 십자가에 달아야 한다고 했던 죄목은 무엇이었습니까? 신성 모독 죄였습니다. 뭐가 신성 모독이라는 것입니까?

19:7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저가 당연히 죽을 것은 저가 자기를 하나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 죽여야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것이 분명한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즉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나라의 왕의 아들 즉 왕자가 아닌데 왕자라고 한다면 그는 무거운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 사람이 진짜 왕자라면 그 왕자를 믿지 못하고 거짓이라고 말하는 자들이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데 믿지 못하고 아니라고 하는 자들이 십자가의 벌을 받아야 하지 않는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영접하지 않고 그리스도로 받지 않은 자들. 이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죄인들이 아닌가? 우리가 이런 자들은 아니었습니까? 로마서1장에서 배운 이방인들의 죄는 무엇이었습니까? 불경건이죠. 불경건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고 하나님의 거부하고 불신하고 하나님을 버린 죄 이것이 신성 모독의 죄가 아닙니까? 이것이 우리의 죄가 아닙니까? 이렇게 볼 때 우리가 십자가 형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주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불신하고 하나님을 버리고 떠난 우리가 져야 했던 우리의 십자가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의 이 십자가를 주님이 대신 지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연약한 몸으로 오신 주님이시기 때문에 주님도 십자가의 죽음앞에 말할 수 없는 두려움과 공포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뭘 하신 것입니까?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신 것입니다.

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주님께서 원하셨던 것은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신의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로 결단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끝까지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잔이라면 그것이 나를 위한 잔이 아니겠냐고. 예수님은 하나님을 끝까지 믿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은 세 번을 정말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따르는 자들이라면 주님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될 때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의 길을 가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누가 함께 있습니까? 제자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도 주님과 같이 깨어서 함께 기도했어야 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깨어서 함께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주님의 십자가의 길에 함께 동참할 각오와 결단이 없다는 말이죠.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제자들은 십자가 앞에서 다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수제자 베드로마저 주님을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합니까?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주님의 십자가가 아닌 우리의 십자가였다는 것. 그것을 주님께서 자신의 십자가로 여기시고 우리를 살리기 위한 순종의 길을 가셨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가는 길은 어떤 길입니까?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가 바로 우리의 십자가임을 알리고 주께서 지신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의 죄가 사라졌기에 우리는 죄로부터 구원을 받았다는 것 즉 죄로부터 해방을 받았고 자유함을 받은 자들이 되었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6:46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어떤 길을 함께 가자고 하시는 것입니까?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같이 가자고 하시는 것입니까? 제자들이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갈수도 없고 갈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면 제자들은 이 십자가를 질 수가 없으니까요. 십자가의 길이 아니고 부활의 영광을 맞이하러 함께 가자고 하시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내가 질 테니 너희는 부활의 영광을 받으라고.

리브가가 야곱에게 했던 말과 너무나 비슷한 말입니다. 저주는 내가 받을 테니 너는 가서 복이나 받으라고.

바울은 뭐라고 했습니까?

고후4: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주님은 제자들에게 생명을 얻게 하기위해서. 함께 가자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받는 고난은 뭡니까? 주님께서 받으신 고난을 이해하기 위해서 잠시 따라해보는 것이고 흉내내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고난을 경험해 보신 분은 알겠지만 잠시 따라하고 흉내내보는 것도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가는 길에 고난이 있고 고생이 있고 어려움이 있고 환난과 시련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고난의 십자가를 지기 위한 길이 아니고 부활의 영광을 얻기 위한 길임을 알기 바랍니다. 그러니 우리는 환난 가운데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은 영광을 받을테니까요. 바울은 로마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우리에게는 지금의 고난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고난 주간을 가고 있는데 이 기간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주님께서 가신 고난의 길은 우리에게 영광의 길을 주시기 위함임을 알고 우리가 주님의 고난에 잠시라고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큰 은혜라는 것을 알기 바랍니다. 이 잠시잠깐의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을 아는 것만큼 값지고 귀한 것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부활의 영광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게 되고 그것이 곧 우리에게 주신 우리의 영광이 되기 때문입니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 하신 주님의 음성을 붙들고 사순절의 남은 기간 주님과 더욱 가까워지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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