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l Church

 

딤전4:12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4:13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4:14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4:15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4:16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어제에 이어서 계속 보려고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먼저는 말과 행실에 있어서 본이 되어야 한다고 했고 다음에는 사랑과 믿음과 정절입니다.

사랑과 믿음이라는 것은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사랑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사도가 여기에서 말하는 사랑은 세상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것입니까? 바울은 고전13장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전13: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13: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13: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13: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오래 참고 견딘다는 말이 나옵니다. 사랑은 기본적으로 오래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세상은 어떤가? 오래 참고 견디지 못합니다. 그래서 쉽게 깨어지고 쪼개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얼마큼 참아야 오래 참는 것일까요? 15장에 보면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나옵니다. 세가지 비유가 나오는데 세번째가 탕자의 비유입니다. 탕자가 아버지 집을 나갔을 때 아버지는 탕자를 오래 기다립니다. 언제까지 입니까? 그가 돌아올 때까지 입니다. 그러니 이 기다림이라는 것은 끝이 없는 것입니다. 요한 사도는 요13장에서 주님의 삶을 이렇게 증거했습니다.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끝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이 바로 주님의 사랑이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이렇게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 바울은 디모데에게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려면 이런 사랑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도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 안에도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은 조건을 가지고 믿는 것입니다. 이것을 해주면 믿고 내 요구를 들어주면 믿고 그렇지 않으면 언제든지 버리고 떠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사실 진정한 믿음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이런 조건적인 믿음은 없습니까?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믿음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조건 없는 믿음입니다. 만일 우리를 조건을 가지고 우리를 믿으려 하셨다면 누가 하나님의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겠습니까? 구원이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떤 조건을 만족시켜서 구원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구원 받을 자격이 없고 조건이 안되는 자들이었습니다. 오직 주님께서 구원의 모든 조건을 만족시켜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져 값 없이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믿을 때 또 형제 자매를 믿고 사랑할 때 어떤 조건을 가지고 믿으려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세상적인 방식인 것입니다. 믿는 자들의 본이 되지 못합니다. 그것은 우리 믿는 자들의 방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믿음에 있어서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려면 하나님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믿어주어야 합니다. 조건을 달지 말고 그를 끝까지 믿어주는 것. – 여러분, 이럴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수 있을까요?

우리가 사랑하고 믿어 주어야 할 사람은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사실 보면 우리가 가장 많이 화를 내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나는 지난 1년간 누구에게 가장 많이 화를 냈는가? 내가 가장 사랑하고 믿어주어야 할 사람이 아니었나요? 우리의 부모, 가족, 남편, 아내. 사랑하는 자녀들. 가까운 친구들. 우리는 이들을 사랑하지 못하고 믿어주지 못하고 오히려 더 많이 더 자주 화를 내며 살고 있습니다. 왜 그러느냐?

우리의 뇌의 영역을 보면 자기를 인지하는 영역이 있고 타인을 인지하는 영역이 있는데 나와 가까이 있는 사람일수록 마치 자기와 같이 인지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맘대로 안되고 자기가 원하는대로 안되면 불같이 화를 낸다는 것입니다. 마치 자기 맘대로 자기 뜻대로 일이 되지 않을 때 자신에게 화를 내듯이 가까이 있는 자들에게 화를 낸다는 것입니다. 가까운 관계 있는 사람들에게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사실 자기에게 화를 잘 낸다는 것이고 자기에게 화를 잘 낸다는 것은 자기를 잘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왜 잘 사랑하지 못하나? 사랑을 잘 못 받고 자란 것입니다. 사랑의 결핍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충만하게 채워져야 그래서 흘러넘쳐야 남도 자기 몸처럼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어디에서 이 사랑을 충만히 채울 수 있을까요? 믿지 세상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에서는 누구나 사랑을 달라고만 하지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 부족하고 결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랑은 우리에게 넘치게 부어주시는 하나님 안에서만 주님 안에서만 채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로 가야 합니다. 주님으로부터 이 사랑이 충만히 채워진 자들은 다른 사람들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랑과 믿음에 있어서 믿지 않는 자들과 또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될 수 있는지 아시겠습니까? 주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충만한 사랑안에 넘치는 은혜 안에 거할 때만이 사랑과 믿음의 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올 한해 이런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정절입니다. 이것은 순결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것이 섞이면 안됩니다. 깨끗해지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우리 안에 세상적인 것들, 더러운 죄들이 들어와 섞여 있는지 모릅니다. 타락이 뭡니까? 죄가 우리 속에 들어와 섞여지게 된 것입니다. 선과 악이 함께 섞여 있는 것입니다. 이 죄를 분리하고 쪼개는 것이 구원의 시작입니다. 또 세상은 늘 우리를 더렵히려고 합니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눈을 통해 온갖 더러운 것들이 들어오잖아요. 그래서 눈 관리를 잘 해야 하고. 항상 성령의 불로 우리 속에 있는 더러운 것들 태워 없애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 중에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순결하라고 했습니다.

10: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지혜와 순결은 같이 가는 것입니다. 지혜롭지 못하면 그래서 어리석은 자들은 쉽게 더렵혀집니다. 왜냐면 사단마귀가 우리를 유혹하고 시험하는데 지혜가 없으면 쉽게 당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마귀의 유혹과 시험을 이길 수 있나? 말씀은 우리에게 지혜를 줘서 우리를 지켜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의 지혜를 가진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올 한 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가득 채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마귀의 공격이 통하지 않을때까지. 마귀의 수준이 있습니다. 마귀의 수준을 넘어서면 새로운 세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자면 우리의 수준이 높아져야 합니다. 말씀의 깊이가 깊어져야 합니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릴 수는 있어도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올 한해 우리가 다 이런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의 이 권면의 메시지를 잘 붙들어서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모든 믿는 자들의 본이 되는 참으로 멋있고 근사한 주의 백성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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