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3: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3: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3: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3: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3: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3:18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어제에 이어서 보겠습니다. 앞부분에서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선을 행하는 자도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고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이 죄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멀어진 자들, 하나님과 분리된 자들은 위엣 것, 곧 하늘의 것을 사모하지 못하고 땅의 것만을 사모하고 찾다가 많은 죄를 짓게 된다고 했는데요.
자, 오늘 본문에서는 이들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롬 3: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3: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3: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1절과 12절이 마음과 생각으로 죄를 짓는 것이라면 이것은 말과 행실에 있어서 죄를 짓는 모습을 그려놓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바울이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썼던 편지 내용 중에 믿는 자들의 본이 되어야 할 덕목에 대해서 봤었는데요. 다섯가지가 있었는데요.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들의 본이 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말과 행실에 있어서 본이 되지 못하는 모습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이 되지 못하면 악하게 이용되는 것입니다. 다시 보면
목구멍과 혀와 입술과 입 그리고 발이 나오는데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너무나 귀하고 선한 우리의 신체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악한 도구가 되어서 사용되는 것입니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것들 중에 악한 것은 없습니다. 다 선한 것인데 인간이 악하게 쓰는 것 뿐입니다. 죄를 짓는데 사용하기 때문에 악한 것이 되는 것이지 원래부터 악하게 창조된 것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죄인된 인간이 행한 악을 바꾸어 선이 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악도 선으로 바꾸어 주시는 분인데 타락한 인간은 선을 악으로 바꾸어 쓰는 것입니다.
[선악과는 뭐냐? 농약 같은 것. 사람의 신앙을 죽게 만드는 것. 뭐겠나? 이상한 생각들. ]
악하게 쓰니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 되고 혀는 말씀을 전하고 복음을 전해야 할 도구인데 사람을 속이는 일을 하게 되고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나오게 되고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또 발은 피 흘리기 위한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원래 발은 복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로 지어준 것인데 그것이 죄를 짓고 무고한 피를 흘리기에 빠른 발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귀하고 선한 것을 귀하게 선하게 잘 사용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악한 죄를 짓기 위한 도구로 악용하고 있지는 않는가? 하나님과 분리 되고 하나님과 멀어지면 아무리 귀하고 선한 것이라도 이렇게 악한 도구가 되어 죄를 짓는데 사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 첫번째가 바로 말이라는 것입니다. 좋은 말, 선한 말, 사랑과 믿음의 말이 아닌 사람을 상처주고 판단하고 정죄하는 죽이는 말을 하는 아주 악한 도구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발입니다. 발은 행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니 악한 생각을 하고 악한 생각을 하니 악한 말을 하고 악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과 멀어지면 먼저는 마음과 생각이 부패하고 그 다음에 말과 행동이 부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총체적으로 타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 이제 이런 자들의 삶은 어떻게 되는가?
3: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3: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다고 했습니다. 누가 생각이 나냐면 탕자가 생각이 납니다. 아버지를 떠나자 결국 어떻게 되었나? 자신의 자유를 누리며 하고 싶은 모든 것을 다 하면서 정말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가리라 생각했겠지만 아버지가 주신 재산을 다 탕진하고 나니 결국 파산하게 되고 먹을 것이 없어 하기 싫어도 돼지를 치는 일을 하잖아요.
돼지는 배부르게 먹이면서 정작 자신은 돼지가 먹는 먹이조차 먹지 못하는 참으로 비참하고 비굴한 인생이 되어버렸습니다. 파멸과 고생의 인생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런 자에게 평강이 있을 수 없지요.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사실 그 길을 알아도 가지 않아요. 왜냐면 믿지 못하니까요.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위로와 평강을 얻을 수 있다고 알려주어도 가지 않습니다. 믿지를 않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3:18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없고 두려워함이 없습니다.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으니 뭘 두려워하겠습니까? 서슴 없이 죄를 짓지 않겠습니까?
잠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모든 지식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들으면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생깁니다. 그런데 미련한 자는 말씀을 듣지 않죠. 이들은 지혜와 훈계를 멸시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두려움이 없고 경외심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에 대한 경외가 있는 자들. 이 경외심이 확인된 자들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러했습니다. 그에게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겠다고 하시고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후손들이 약속하셨지만 그에게 이런 축복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뭐냐? 다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가장 두려워하고 경외할 수 있는가? 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삭번제를 통해서 확인 되잖아요.
창22: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경외심이 확인이 되자 하나님께서 놀라운 복을 주십니다.
창22: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22: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받고자 한다면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버리지 않고 무시하지 않고 멸시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가장 경외하고 섬기고 사랑할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나?
부활하신 주님이 베드로에게 찾아오셔서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나?
요21: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 땅에 있는 그 어떤 것 그 어떤 사람보다 주님을 가장 사랑할 수 있는가? 그런 자에게 주의 양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이 이런 모습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가장 귀한 것들을 맡기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이 주신 귀하고 선한 것을 악하게 쓰는 자들은 파멸과 고생의 삶을 살겠지만 우리는 하나님만을 더욱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여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고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는 자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