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에 이어서 보겠습니다.
롬8:36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이것은 시편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시44:22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이 말씀은 주께서 가셨던 길입니다. 주님은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셨습니다. 이와 같이 지금 로마에 있는 교우들의 모습이라는 것이 마치 죽임을 당케 되고 도살할 양과 같은 모습처럼 겹겹이 둘러싼 고난과 핍박의 상황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의 영적인 상황은 아닙니까? 눈에 보이는 현실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의 영적 정황은 어떤 것입니까? 지금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치열한 영적 전쟁 가운데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엡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정세와 권세자들, 세상 주관자들, 영어로는 ruler입니다. 이들을 힘이 없는 자들이 어떻게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 뿐입니까?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세상 주관자들의 손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 아닙니까? 연약한 우리로서는 이들을 감당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는 말합니다.
롬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는 것입니다. 간신히 이기는 것이 아니라 넉넉히 이긴다고. 우리는 세상을 이기신 주님을 따라가는 것이니까요.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주님은 세상을 어떻게 이기셨습니까? 주님께서 세상을 이기신 방식은 어떤 것입니까? 총 칼 같은 무력으로 세상을 이기신 것입니까? 주께서 세상을 이기셨다는 것은 세상의 미움을 이기시고 교만을 이기시며 불신과 불순종과 같은 죄를 이기신 것입니다. 주님은 세상의 온갖 죄에 대해서 특별히 말할 수 없는 미움의 죄를 넘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넉넉히 이기신 것입니다.
죄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죽음입니다. 이 죽음을 죽음으로 이기시고 다시 사신 것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 – 여러분 우리에게는 이 모든 죄와 사망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사랑안에서 함께 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넉넉히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길이라는 것은 이미 모든 것을 이기고 승리하신 승리자 그리스도와 함께 가는 길이라는 것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이기는 길이 있고 지는 길이 있다면 어떤 길로 가겠습니까? 우리의 인생이 풍성한 결실을 가득 맺는 삶이 있고 아무 결실이 없는 헛되고 무익한 삶이 있다면 어떤 삶을 따라 살겠습니까?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포도나무이신 주님 안에 있을 때만이 비로소 우리가 많은 과실을 맺을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나라는 것. – 이것을 아는 것이 신앙의 성숙입니다. 주님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모든 것을 넉넉히 이길 수 있다는 사도의 이 믿음이 우리의 믿음이 되기를 원합니다.
롬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로마서 8장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이것은 사도의 아름다운 고백이자 신앙의 확신입니다. 우리 안에도 이런 신앙의 고백과 확신이 있기를 바랍니다.
자, 여기보면 이 땅의 그 어떤 세력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요? 먼저 바울은 사망과 생명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망은 죽음이죠. 죽음이 온다 할지라도 나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자기 생명보다 더 귀한 아들 이삭이 있었습니다. 그런 이삭을 번제하라고 하십니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가?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이것은 그 어떤 것도 내 생명보다 더 귀한 아들 조차도 하나님 앞에 둘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순종의 길을 가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생명과 같은 아들 예수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것입니다.
롬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하나님은 자기 아들조차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내어주신 분입니다. 우리가 이 큰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도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겠다는 것입니다. 죽음이 온다 할지라도 자기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 이 권세자들은 사망의 권세를 가진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사탄 마귀입니다. 이 영적 존재들 조차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 이것은 시간에 관한 것입니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어떤 때라도 이 사랑은 끊어지지 않고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능력이나 – 이것은 힘입니다. 어떤 강력한 힘이나 권세도 이 사랑을 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 높음이라는 헬라어 원어의 뜻은 점성술을 의미합니다. 옛날 사람들은 별을 보고 점을 치면서 길흉화복을 판단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헛된 신들로 가득한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미혹을 받고 살았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미신과 점성술과 타로 등등. 이런 것들이 지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는 말합니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사도의 신앙의 확신이 우리의 신앙의 확신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