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l Church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15:1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15:2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15:3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15: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15: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15: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15: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주님의 고별설교입니다. 제자들과의 마지막 자리에서 주님은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한다면 그 마지막 순간에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영화같은데서 보면 죽기 직전에는 정말 하고 싶었는데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말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도 정말 하고 싶은 말을 하시지 않았겠습니까? 주님도 그러하셨을 것입니다.

주님은 이제 곧 십자가에 처참한 고통 속에 죽어갈텐데 자신에 대한 걱정은 없고 오직 자신이 죽고 난 이후 남겨질 제자들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습니다. 이들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지혜가 되고 생명이 될 말씀을 전해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그런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니 이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우리를 알 수있습니다. 말씀을 보겠습니다.

15:1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15:2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15:3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15: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6절까지는 포도나무에 가지가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듯이 너희도 내 안에 거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곧 세상을 떠나십니다. 이제 주님 안에 함께 거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주님 안에 거할 수 있는가?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살아있으면 곧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 되고 그럴 때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는 것입니다. 다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놀라운 축복의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곧 주님은 떠나십니다. 이제 제자들은 주님을 만날 수 없고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에게는 주님의 말씀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야 합니다. 주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15: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바로 과실을 맺게 하는 것입니다. 생육하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 말씀 안에 거하며 그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지금 주님은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말씀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36개월 동안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많은 말씀들이 무엇이었나? 그것은 마22 37절로 40절의 말씀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22: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22: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22: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22: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말씀대로 사셨습니다. 그래서 너희도 나처럼 살라하신 것입니다.

15: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신 말씀처럼 주께서도 하나님을 사랑했고 또 너희를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너희도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은 자는 사랑을 주는 것이 마땅한 것이고 그것이 건강한 것이고 그것이 태초에 계획하신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뜻을 모르고 안다 해도 무시하며 반역하기까지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너희 만큼은 이 사랑을 알았으니 이 사랑으로 주의 말씀의 계명을 지키고 살라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하는가? 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가?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부모가 원하는 것은 단지 자녀가 기쁘게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것들은 다른 그 누구가 아닌 제자들 안에 기쁨이 충만하게 있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인생의 목적, 인생의 의미가 어디에 있나? 힘들고 고통스러울려고 사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나 인생을 기쁨으로 행복하게 살고자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힘들게 고생하며 사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지금은 힘들어도 나중에라도 기쁘고 행복하게 살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어디에서도 그 무엇으로도 우리가 원하는 기쁨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아무리 많은 것을 누려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럴수록 더 큰 공허함과 허무함이 밀려온다는 것입니다.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일수록 그 안에 더 큰 허무가 온다는 것입니다. 선진국에 사는 사람들 안에 인생에 대한 기쁨과 만족이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가난한 나라 후진국 사람들이 그들보다 더 행복하다고 느낀다는 것입니다. 가지지 못했을 때는 많이 가지게 되면 행복하고 기쁠 것 같았는데 많이 가져보니 그것으로 안되더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기쁨과 만족은 어디에 있습니까? 오직 주님께 있는 것입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만족이시요 기쁨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을 몰라 방황하고 헤매이며 사는 것입니다. 주님은 어떻게 무엇으로 우리에게 충만한 기쁨을 주시는가? 다른게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의 계명을 듣고 그것을 지킴으로. 비로소 우리 안에 기쁨이 충만케 된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무엇이고 그 계명이 무엇인가?

15: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은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하는 사랑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의 사랑을 보고 그 사랑을 닮아서 하는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보이신 사랑은 한마디로 말하면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가 무엇인지 모르고 이 십자가를 보지 못하면 결코 그렇게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제자들을 세우시고 그들에게 공생애 기간 동안 보여주신 것은 십자가의 사랑이었습니다. 제자들에게 이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주님은 모든 것을 비우셨습니다. 목숨까지도 말입니다.

이 십자가를 가장 정확히 보고 이해했던 자가 누구였습니까? 살아생전 주님을 만나지도 못했던 바울 사도였습니다. 역사는 십자가의 의미를 깊이 깨달은 자를 통해 이어져 가게 되어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누구보다 십자가를 깊게 이해하려고 몸부림쳤던 그런 교회였습니다. 십자가는 십자가를 져 본 사람만이 십자가를 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라만 보는 자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는 내 제자되기에 합당하지 않다고 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받은 자들로써 그 의미를 알고 십자가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할 수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주님 감사합니다. 포도나무신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하게 하시고 주의 말씀 따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를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되게 하여주옵소서. 주께서 보이신 십자가의 사랑으로 사랑의 역사를 이어가고 놀라운 구원의 새 지평을 열어내는 자들이 다 되게 하여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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