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8:35 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한 맹인이 길 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18:36 무리가 지나감을 듣고 이 무슨 일이냐고 물은대
18:37 그들이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하니
18:38 맹인이 외쳐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8:39 앞서 가는 자들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18:40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더니 그가 가까이 오매 물어 이르시되
18:41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18:42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18:43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한 맹인이 주님을 만나 고침을 받는 이야기입니다. 앞을 못 보던 자가 눈을 뜨게 된 이 사건은 영적으로 보면 하나님과 멀어진 자들은 진리에 눈먼 자들이기에 이 말씀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 맹인이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는지를 함께 보겠습니다.
눅 18:35 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한 맹인이 길 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이 맹인은 구걸하던 자 즉 거지였던 것입니다. 앞을 못 보면서 가진 것도 없는 참으로 비참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앞도 못 보고 가진 것도 없는 불쌍한 거지가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 왜 입니까? 이런 상황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절망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소망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맹인은 어떠했는가? 앞을 못 보기 때문에 이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구걸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구걸이라는 것은 요구하는 것이고 구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주님이라는 말을 듣고 주님을 구하는 것입니다.
18:36 무리가 지나감을 듣고 이 무슨 일이냐고 물은대
18:37 그들이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하니
18:38 맹인이 외쳐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하면서 자비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절망에 사로잡혀 있었다면 주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들을수도 없었을 것이고 그러면 주님을 만날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비록 우리의 눈은 닫혔다 할지라도 우리의 열린 귀가 있기 때문에 귀로 들려오는 소리에 이 사람은 민감하게 반응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사람은 예수를 통해 고침을 받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었고 그래서 자신도 주님을 만나면 고침을 받고 구원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주님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 모릅니다. 그러니 주님이라는 말을 듣고 소리 높여 외치기 시작한 것이죠.
이 사람은 사람들이 비록 맹인이고 가진 것이 없는 거지였지만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음성을 귀로 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들을 수 있는 귀 하나만으로도 결국 이 사람은 주님을 만나게 되었는데요. 우리는 흔히 이것이 없고 저것이 없고 이것이 부족하고 저것이 부족하고 상황이 안되고 환경이 안되고 능력이 없고 등등. 이런 저런 수많은 핑계를 대면서 열등감에 빠져 불만과 불평으로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너무나 상대적인 것들입니다. 내가 가진 것이 두 개라고 하면 열개를 가진 사람과 비교하면 나는 너무나 적게 가진 것이 되지만 하나 밖에 없는 사람과 비교하면 나는 두배를 가진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안에 있는 불만족이라는 것은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자와 자신을 비교하기 때문에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20장에서 포도원의 품꾼 비유가 있는데 먼저 온 자가 주인을 원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중 온 자는 한 시간밖에 일을 하지 않았는데 먼저 와서 힘들게 일한 자신들과 똑같은 한데나리온의 돈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비교를 한 것입니다.
나보다 잘 나고 나보다 많은 것을 가지고 나보다 능력이 많은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살게 되면 우리는 항상 불행하고 우울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좌절과 절망에 빠져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게 됩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희망은 아무리 절망의 상황 가운데 있는 자라할지라도 주님을 만날 수 있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주님을 만나 구원을 받은 자들의 기록을 보면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그런 환경과 상황이 아닌 자들이 의외로 주님을 만나고 구원을 받는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이 말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내가 절망하지 않고 의지를 세우고 구하고 찾기만 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우리를 외면치 않으시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사람들이 말을 듣고 이 맹인 가진 입으로 큰 소리로 주님을 부르면서 자신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람은 무엇을 주님을 만나게 되었나? 귀와 입이었습니다. 귀와 입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이 말은 누구라도 주님을 다 만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18:39 앞서 가는 자들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앞서 가는 자들이 이 맹인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그를 꾸짖고 잠잠하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주님을 따라가는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이들로부터 꾸짖음을 당하고 잠잠하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 맹인과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꾸짖어 잠잠하라는 사람들로 인해 저지당하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주변 사람들의 말에 눌려서 잠자코 있겠습니까? 이 맹인은 이럴수록 더 크게 소리를 지르며 주님을 향해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 맹인의 음성을 들으셨습니다.
18:40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더니 그가 가까이 오매 물어 이르시되
18:41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주께서 이 사람을 불렀습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반드시 우리의 간절한 음성과 우리의 기도를 외면치 않으시고 응답하실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포기하지 말고 계속 가야 합니다. 조금 기도하고 조금 구했는데 응답이 없다고 포기하거나 절망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언제까지 하는가? 이루어질 때까지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사람을 부르셔서 물으셨습니다. 무엇을 원하느냐고. 그러자 이 사람이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 맹인이 간절히 원하고 바랐던 것은 앞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으시고 주님께서 참으로 멋있는 말씀을 하시고 기적을 일으켜 주셨습니다.
18:42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구원은 우리의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어야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누가 대신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아무리 신앙이 좋아도 자녀가 그 부모의 신앙을 따라 신앙이 좋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 일대일로 주님을 만나고 구원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맹인이 눈을 뜨고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사람이 주님에 대한 믿음을 드러냈었기 때문입니다. 이 맹인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습니까? 이 사람 안에는 두가지 믿음이 있었습니다. 첫번째는 예수가 구원자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어떤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찾고 부르짖는다면 주께서 외면치 않으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를 구원하신다라는 믿음. 이 두가지 믿음이 이 맹인 안에 있었고 그 믿음으로 이 사람은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이 믿음 가지고 나아간다면 어떤 악한 상황, 어떤 불가능한 조건 속에서도 우리가 주님을 만나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