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1:18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1:19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네가 이 외에 네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오늘 본문은 빌레몬에게 보낸 바울의 편지 중에 일부분입니다. 이 두 구절안에 복음의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 본문을 보면
몬1:18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이 편지를 쓸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빌레몬의 종이었던 오네시모가 주인의 돈을 훔쳐서 로마로 도망을 왔는데 그곳에서 바울을 만나 전도가 된 것입니다. 바울이 오네시모를 만나서 얼마나 기뻐하며 말씀을 가르쳤겠습니까? 말씀을 가르치다 보면 말씀을 전하는 사람에 대한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왜냐면 말씀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깊은 신뢰관계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오네시모는 바울을 깊이 신뢰하게 되어서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전부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네시모가 빌레몬의 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자초지종을 다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오네시모의 사정을 다 알게 된 바울은 오네시모를 잘 가르쳐서 자기 옆에 두려 하지 않고 먼저는 빌레몬에게 다시 보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왜냐면 먼저는 빌레몬과 오네시모를 화해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그를 형제로 받아주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편지한통을 써서 오네시모의 손에 들려 빌레몬에게 전했던 것입니다.
만일 바울이 오네시모를 빌레몬과 화해하지 않은 채로 데리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언젠가 한번은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만나게 되지 않았겠습니까? 그 때가서 이 둘의 관계가 큰 문제가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바울은 사람을 키울 때 자신의 유익을 위하지 않고 그 영혼의 미래를 생각하며 그에게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둘을 어떻게든 화목한 관계가 되게 해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무엇이 이 둘의 관계를 가로 막고 있는가?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하는데 있어서 걸림돌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그것을 풀어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18절에 보면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불의를 했던 것이 있거나 또는 빌레몬에게 빚진 것이 있다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는 것입니다. 오네시모가 빌레몬의 돈을 훔친 것이 있다면 그것까지도 바울이 다 갚아주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바울이 오네시모가 훔친 돈을 갚아줄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둘이 화해를 하는데있어서 조금이라도 거리끼는 것이 있다면 그것까지도 다 해결해주어서 조금의 흠도 없는 아름다운 화목의 관계가 되게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신 복음의 세계입니다.
우리가 갚아야 할 모든 죄의 빚을 주님께서 대신 갚아주신 사건 –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인에서 의인이 되고 구원을 받아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닙니까? 지금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의 삶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네시모가 갚을 능력이 안되니 바울이 친히 갚아주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다 갚아줄 테니 너는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사랑받는 형제로 받아주라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서 한마디를 더 붙였습니다.
1:19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네가 이 외에 네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오네시모가 빚 진 것이 있다면 내가 다 갚아줄 것이지만 나는 네가 나에게 빚진 것을 말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남이 진 빚까지 갚아주려 했던 바울. 그러나 자신이 받아야 할 빚은 결코 받지 않으려 했던 바울입니다.
빌레몬에게 있어서 바울은 스승이었습니다. 제자인 빌레몬이 스승인 바울에게 얼마나 많은 빚을 졌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제자인 빌레몬에게 그 빚진 것을 말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스승이 이러할찐대 마땅히 제자 또한 스승의 삶을 본 받아 살지 않았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도 이렇게 살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우리가 받아야 할 것이 있다면 어떻게든 받으려 하지 않습니까? 내가 갚아야 할 것은 쉽게 잊어버리고 받아야 할 것은 어떻게든 받아내려고 하는 모습. 그러나 이것은 복음의 모습이 아닙니다. 바울은 이와 반대로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살면 항상 손해를 보고 마이너스의 인생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그렇게 보일 수 있지만 결과는 반대입니다.
바울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빌레몬이 바울의 이 편지를 받아들고 어떻게 바뀌었겠습니까? 결과적으로 보면 바울은 오네시모를 얻었을 뿐 아니라 빌레몬과 오네시모를 화해시켜서 아름다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냈습니다. 역사의 기록에 의하면 오네시모가 훗날 에베소 교회의 감독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바울은 교회 역사에 있어서 정말 귀한 한 사람을 얻은 것입니다. 마이너스가 아니고 플러스가 된 것입니다. 비우면 채워지고 낮아지면 높아지는 역설의 진리 – 이것이 바로 복음의 위대한 능력입니다. 이 복음으로만이 열매가 맺혀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복음을 따라 우리도 아름다운 복음의 열매, 사랑의 열매를 가득 맺는 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