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l Church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왕상17:17 이 일 후에 그 집 주인 되는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가 숨이 끊어진지라 

17:18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17:19 엘리야가 그에게 그의 아들을 달라 하여 그를 그 여인의 품에서 받아 안고 자기가 거처하는 다락에 올라가서 자기 침상에 누이고 

17:20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또 내가 우거하는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이 죽게 하셨나이까 하고 

17:21 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의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니 

17:22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17:23 엘리야가 그 아이를 안고 다락에서 방으로 내려가서 그의 어머니에게 주며 이르되 보라 네 아들이 살아났느니라 

17:24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

아침예배에 이어서 보려고 합니다.

엘리야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그대로 했더니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이 에피소드가 끝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고 이 이야기는 조금 더 갑니다. 무슨 이야기가 남아 있을까?

왕상17:17 이 일 후에 그 집 주인 되는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가 숨이 끊어진지라 

이렇게 다 살게 되었는데 이 과부의 아들이 병이 들어 위중하다가 숨이 끊어져 죽은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요? 우리로서는 다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함부로 입을 열어 죄를 지으면 안됩니다. 잠잠히 하나님의 뜻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55:8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55:9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땅에 사는 인간이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다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끝까지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을 끝까지 믿을 수 있겠습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말입니다. 지금 이 과부에게는 사랑하는 아들이 병들어 죽게 되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믿을 수 있겠나?

이 과부는 어떠했는가?

17:18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지금 이 여인은 자기 죄를 탄식하면서 엘리야를 원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죄를 생각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나에게 왔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가르치다면 보면 처음에는 말씀을 통해서 죄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생각나게 합니다. 율법은 어떻습니까? 죄를 지으면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금 이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를 통해서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되었고 그 죄로 인한 벌로 자기 아들이 죽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통의 가루와 병의 기름이 떨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나오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자기 아들이 죽자 그전에 받았던 은혜는 다 잊어버린 것입니다. 이제는 마치 엘리야가 자기에서 복이 아닌 저주를 가지고 온 사람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이런 모습은 없습니까? 생각지도 못한 시련이 찾아왔을 때 자신을 전도해 주고 자신에게 말씀을 가르쳐준 사람에 대해서 불평하고 원망하는 그런 모습은 없는가? 복음서에 보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진주를 돼지에게 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돼지는 귀한 것을 귀한 것으로 알아보지 못하는 무지한 자를 말하는 것이고 개는 말씀을 준 자를 물어 뜯는 배교자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 생각해봅시다. 이 과부의 아들이 죽은 것이 엘리야 때문입니까? 엘리야가 오지 않았더라면 이 아들이 죽지 않았을까요? 오히려 엘리야가 오지 않았더라면 진작에 배고파서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죽었을 것입니다.

아무 연관도 없는 엘리야를 자기의 이상한 생각을 가지고 엘리야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누구의 생각이겠습니까? 이것이 마귀가 주는 생각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현대인의 성경]왕상17:18 그러자 엘리야를 먹여 살리던 과부가 이렇게 탄식하였다. `내 죄가 많아서 이 아들이 죽었습니다. 당신이 내 죄를 모두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고해 바쳤기 때문에 내 아들이 죽었습니다. 왜 이렇게 우리 집을 환난에 빠뜨려 놓으십니까?' 그 과부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자기의 죄값으로 아들이 죽었다고 생각하면서 이렇게 탄식하였다.

엘리야를 향해서 자기 집안을 환난에 빠뜨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이 과부의 말을 듣고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이 과부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리고 싶지 않았을까요? 왜 내가 이 과부한테 이렇게 수모를 당해야 하나?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엘리야는 우리의 생각처럼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17:19 엘리야가 그에게 그의 아들을 달라 하여 그를 그 여인의 품에서 받아 안고 자기가 거처하는 다락에 올라가서 자기 침상에 누이고 

그의 죽은 아들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디로 가는가? 다락으로 올라가서 침상에 뉘었습니다. 뭘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 이 아이를 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17:20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또 내가 우거하는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이 죽게 하셨나이까 하고 

엘리야도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게 부르짖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신 거냐고. , 여러분, 왜 이런 죽음이 찾아온 것일까요? 무엇 때문일까요? 우리가 그 이유를 다 알 수 없습니다. 다 안다는 것은 교만입니다. 단지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죽음의 영이 찾아와서 누구나 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 과부의 아들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죽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누가 있습니까? 죽은 자를 다시 살릴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곳에 죽음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주를 믿는 자들이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왜 그런가? 주님께서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실 것이고 또한 영원히 죽지 않는 영생을 주실테니까요.

[현대어의 성경]11:25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죽은 자를 일으키고 그들에게 다시 생명을 주는 자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사람은 죽는다 하여도 다시 살 것이다.

11:26 또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마르다야, 네가 이것을 믿느냐?"

죽은 자를 다시 살게 하시는 부활과 영생의 주님이 계신데 죽음을 왜 두려워하겠습니까? 지금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있는데 왜 죽음 앞에 눈물 흘리며 탄식하며 원망하겠습니까? 이것을 불신입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눈물 흘리는 것이고 탄식하는 것이고 절망하고 원망하는 것입니다.

이 사르밧 과부가 하나님을 믿고 엘리야를 믿기는 믿었지만 여기까지는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죽은 아들이 다시 살게 되리라는 부활의 대한 믿음은 없었던 것입니다. 이 부활의 믿음이 있지 않고서는 죽음의 영을 이길 수 없습니다. 주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주님의 온전한 제자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게 해야 합니다. , 엘리야는 어떻게 합니까?

17:21 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의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니 

엘리야가 간절히 하나님께 다시 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17:22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죽은 아이를 다시 살게 하셨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왜 죽음을 두려워하겠냐고.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이 죽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주를 믿는 자들에게는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17:23 엘리야가 그 아이를 안고 다락에서 방으로 내려가서 그의 어머니에게 주며 이르되 보라 네 아들이 살아났느니라 

17:24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

왜 이 시험이 이 과부에게 있었는지 아시겠습니까? 이 과부가 하나님을 믿고 엘리야를 믿기는 믿었지만 엘리야가 진짜 하나님의 사람인지 그리고 엘리야의 입을 통해 나온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한 것인지를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온전한 믿음을 가지지 못한 자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면 사탄의 참소도 함께 오는 것입니다.

욥에 대한 사탄의 참소가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이 믿음의 시험을 통해서 엘리야가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은 참되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우리의 신앙의 여정 또한 이런 길을 가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끝이 어디인가? 바로 이 믿음을 세우고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경외심을 가지게 될 때. 우리는 그 때를 향해서 가는 것입니다.

이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를 통해서 진정한 신앙인으로 거듭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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