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22:24 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22:25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22:26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22:27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22:28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22:29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22:30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22: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22: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22:33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22:34 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실 때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시고 요13장을 보면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십니다.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 주님께서 그 마지막의 순간에서도 제자들을 섬겨주시는 것입니다. 마지막 남은 한 방울까지 제자들을 위해 다 비워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제자들은 누가 더 크냐? 라는 다툼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누가 더 높냐? 누가 더 큰 사람인가? 누가 더 귀하냐? 라는 다툼에 주님은 이렇게 말슴하셨습니다.
눅22:24 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22:25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22:26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22:27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새번역으로 보겠습니다.
눅 22:24 제자들 가운데서 누구를 가장 큰 사람으로 칠 것이냐는 물음을 놓고, 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22:2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뭇 민족들의 왕들은 백성들 위에 군림한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자들은 은인으로 행세한다.
22:26 그러나 너희는 그렇지 않다. 너희 가운데서 가장 큰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과 같이 되어야 하고, 또 다스리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과 같이 되어야 한다.
22:27 누가 더 높으냐? 밥상에 앉은 사람이냐, 시중드는 사람이냐? 밥상에 앉은 사람이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 있다.
큰 사람이 가장 어린 사람과 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어린 아이와 같이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겸손하고 섬기는 자가 가장 큰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방식과 주님께서 가르쳐주시는 복음의 방식은 이렇게 다른 것입니다. 이런 세상의 방식으로는 결코 한 사람도 변화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뭘까요? 우리의 신분이 죄인에서 의인으로 종에서 자녀로 달라질 뿐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진정한 기쁨과 평안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의 마음이 이렇게 바뀔 수 있는가? 은혜. 위로부터 오는 성령의 은혜로만 우리가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어떻게 우리에게 임하게 됩니까? 섬김 받아야 할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주님께서 가장 낮은 자리에 서시고 그 자리에서 우리를 섬겨주신 그 사랑을 통해서 – 그 사랑이 나타나는 자리에서 말할 수 없는 은혜가 내리는 것입니다. 누가 이 은혜를 받을 수 있는가? 주님께서 나타내 보이신 사랑의 자리이신 십자가를 바라볼 때. 그 십자가가 사랑임을 깨닫게 될 때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 놀라운 은혜의 세계를 다 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22:28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너희는 나와 같이 함께 고생하고 함께 동고동락했던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함께 지고 간 나의 사랑하는 제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자들을 향한 주님의 마음입니다. 그러니 너희들에게 이스라엘의 열두지파를 다스릴 수 있는 큰 권세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권세는 힘이 있는 자들이 차지하지만 진정한 권세는 십자가의 길을 따라사는 자들이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22:29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22:30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주님의 나라에 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골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사랑의 아들의 나라가 있는데 그리로 우리를 옮기셨다는 바울의 고백입니다. 그렇게 주님께서 세상의 방식을 따라 사는 그런 세계가 아닌 주님께서 보이신 복음의 진리를 따라 사는 그런 아들의 나라로 우리를 옮기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주님께서 말씀하신 복음의 방식을 좇아 살아 가는 아들의 나라의 백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곳에서 그 아들의 나라의 삶을 연습하는 것입니다. 이곳에서 잘 연습받고 훈련 받아서 주의 아들의 나라의 삶이 낯설지 않아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주님께서 보이신 복음의 방식을 잘 알아야 합니다. 31절부터는 그 복음이 무엇인지를 알수 있게 합니다.
22: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22: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22:33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22:34 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주님은 베드로가 부인할 것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어떻게 아셨을까요? 주님은 능력이 많으시니까 다 아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통한 어떤 능력으로 미래를 보아서 아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의 지금까지의 삶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아직 주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합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어떤 것인지. 왜 주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지. 왜 그 길을 피하지 않으시는지. 십자가를 모르는 자가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함께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와 함께 라면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갈 수 있다고 말하지만 이 믿음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죽음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어디에 있어서 이런 말을 할까요? 베드로는 자신이 죽음의 공포, 그 두려움 정도는 충분히 이길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 자기 자신에 뿌리를 둔 풍선 같은 믿음입니다. 풍선은 바람이 들어가면 너무나 쉽게 부풀어 커집니다. 그런데 작은 바늘에도 너무나 쉽게 무너지고 터질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라는 날카로운 가시를 견딜 수 있는 믿음이 베드로에게 있었는가? 없었던 것을 주님을 아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에게는 이런 믿음이 있는가? 베드로는 왜 없었던 것일까요? 부활의 믿음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세상의 사랑처럼 사라지고 없어지는 허무하고 헛된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랑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 주는 사랑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우리를 향한 사랑이었으므로 이 사랑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죽었다 할지라도 다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부활을 여러 번 말씀해주셨습니다.
이것을 깊이 생각해서 기도하고 주의 능력을 구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능력으로 십자가의 공포와 두려움을 이겼어야 했는데 베드로는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능력을 의지해서 맞서 싸우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길 수 있겠는가? 주님도 겟세마네에서 간절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였는데 베드로가 어떻게 스스로의 힘으로 이길 수 있었겠는가?
세 번을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신 것은 아주 철저히 확실하게 그렇게 주님을 버린다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 주님은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너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했다고 말입니다. 그러니 너는 다시 일어날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자신을 그토록 철저히 배반할 것을 아셨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시고 그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그를 벌하지 않으시고 그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죽었다 할지라도 무너졌다 할지라도 다시 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제자들에게 이 복음이 무엇인지를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너를 위해 기도했으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가 다시 회복된 후에 이제는 너의 형제들을 굳게 해주라 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베드로가 무너질 것을 아셨지만 그가 다시 일어날 것을 또 아시고 그에게 믿음이 약한 형제들을 부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그렇게 어린 자들을 섬기셨듯 이제 베드로 너가 그들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주님의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며 이스라엘 열두지파를 다스리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길을 좇아 복음을 능력을 드러내고 사는 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